기독교 칼럼 (이근형 목사) – 완전한 고침
예수는 완전히 고쳤다. 고치다 만것이 아니다. 덜 고쳐 졌다고 생각하게 하는 귀신의 말들이 여전히 돌아다닌다. 예수는 속지말라고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았다는 말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어 세상을 고쳤다는 것이다.
그것이 완전한 치유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이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면 복이 시작된다. 완전함은 영과 혼과 육의 치유를 말하며 그로 인해 사람은 온전한 몸으로 그와 같아지게 된다. 이것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됨이다.
예수는 대충 고치지 않았다. 완전히 고쳤다. 전문적이고 전체적으로 전면적이고 전인격적으로 고쳤다. 그의 치료는 완벽했고 고침받은 사람은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는다. 이것이 빅딜이고 정의다. 예수는 사람이 영,혼,육으로 되어있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은 이 세가지를 다 잃어버렸거나 이 세가지가 마음에 혼재하며 무질서한 인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은 구원의 기회가 된다. 심각하게 망가졌고 수리가 불가능한 상태가 인간의 속사정이다. 이 세가지를 다 고치는 일을 치유라고 한다. 예수는 빈틈없이 다 고쳤다.
성경은 예수의 메시야 취임 설교가 끝난이후에 이렇게 예수를 기록한다. 예수의 한번이자 마지막 설교였던 산상설교의 설교제목은 ‘듣고 행하라’ 라는 것이었다. 성경은 성령을 통해서 듣는 책이라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일과가 끝난후 선한 기대감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 왔다. 성경은 이렇게 적었다. “저물 때에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다.”
이 기록은 예수가 세가지 일을 했다는 것을 말한다. 귀신들을 쫓아내고 인간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다는 것이다. 이말은 사람을 구성하는 영혼육을 다 고쳤다는 기록이다. 예수는 귀신 부터 쫓는다. 똑한 생각도 건강한 몸도 귀신아래에서는 결국 무너진다. 예수 없이 왕노릇했던 자들을 성경은 사탄 마귀 귀신 이라고 부른다.
예수가 오기전에는 사람들은 모두 귀신의 말에 붙들려 있었다. 종교적으로 철저한 사람들이기도 했고 그들은 사람들을 그렇게 몰아부쳤다. 사람들은 진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수가와서 침묵하지 않았다. 예수의 관심은 영과 혼과 육을 모두 고치는 일이다.
예수님의 치유는 단순한 신체거강이 아니다. 영과 혼과 육, 전 존재를 완전하게 고치러 왔다. 고치다 말거나 다음에 고쳐준다거나 너는 고쳐주고 너는 안 고쳐주는 그런 나쁜 치유가 아니다. 예수의 고침은 다 고침이다. 영혼육을 한사람안에 있는 3사람의 내적 존재라고 부른다. 첫째는 영의 사람이 있다.
예수는 영의 사람을 고친다
예수의 전인 치료중에 가장 먼저는 영을 고친다. 망가진 영을, 오염된 영을, 혼합된 영을 예수의 영으로 고친다. 이것은 예수와 교회만 할 수 있다. 영이 무엇인지를 아는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귀신을 추방한다는 것은 귀신의 말을 소멸되게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예수가 다 고쳤다면 교회도 다 고칠수 있다. 때가 되면 교회에게 그런 날이 온다. 그런 날이 가까이 오고 있기 때문에 쉬지말고 기도하고 쉬지 말고 성경을 들어야 한다. 그것도 자기 교회에서 생방송으로 들어야 효력이 있다.
귀신들린 사람들이 예수께 나왔을 때, 예수는 말씀으로 또는 손을 내밀어 그들을 고치셨다. 예수의 손이 닿으면 완전한 치료가 일어난다. 손이 닿지 않아도 말씀만해도 그대로 된다. 백부장의 하인이 죽어가고 있었다. 예수는 가서 손을 대지 않았다. 멀리서 말씀만 했다. 그 순간 하인은 회복되었다.
예수의 말씀이 영이고 생명이기 때문이다. 악령은 사라지고 죽음마저도 접근이 금지된다. 죽음이 사라졌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 일을 하는 하나님의 집이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면서 꾸준히 예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영은 살아나고 복이 있는 사람이 되고 이것이 성경의 구원을 출발하게 만든다. 예수는 이러한 행동을 ‘듣고 행하라’라는 말로 요약해 주었었다. 교회는 말씀을 들으러 가는 곳이다. 이것이 영이 치료되는 길이다.
혼의 사람을 고친다
혼의 사람은 자연인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후손들을 자연인이라고 한다. 지식의 사람이고 이성의 사람이다. 예수 통해 자기의 꿈을 실현하려는 인간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라는 이사야의 말씀처럼, 예수는 우리의 깨어진 감정과 왜곡된 성품도 다 짊어지고 돌아가셨다. 그리고 해결했다. 연약함이라는 말은 혼의 사람을 부를때 쓰는 단어이다. 영을 배우면 혼은 변한다.
자존감의 상처, 지나친 욕심, 감정적 혼란, 그리고 망가진 양심의 흔들림까지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짊어지셨다. 예수는 영만 치료하고 혼은 그대로 두시는 분이 아니시고 사람을 원래의 성품을 가진 인간으로 회복을 시켜 놓으셨다. 내가 영을 치료했으니 혼은 너희가 치료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원래의 인간은 영적인 인간이었다. 영이 예수의 말씀으로 회복되고 있는 사람은 혼의 치유를 위해서 전문 상담가의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영이 분명해야 상담도 효력이 있다. 혼은 영에게 포함된다. 혼적인 일은 나 자신의 일이라고 보면 된다.
육의 사람을 고친다
건강하게 살다가 몸에 병이 온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는 이미 그의 육체가 채찍에 맞아 갈기갈기 모두 찢겼다, 짐승들에게 물어뜯긴 어린양처럼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길가에 버려진 장미처럼 이미 그는 세상에 버려졌다. 병든 나를 고치기 위해서 그랬다.
그 일이 나의 질병이 치료되는 근거가 된다. 죄의 결과는 사망인데 사망으로 가는 질병을 그가 대신 고통받음으로 내가 치료를 받게했다는 말이다. 고난은 늘 기적과 생명을 만드는 기회였다.메시야는 고난 받고 죽었으나 다시 살아났었다. 세상에 다시 기회를 준것이다. 교회는 그의 길을 따라 가는 성령의 전이다.
교회가 질병을 해결하는 방법이 여기에 있다. 장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교회가 질병을 나누어 짊어지는 방법은 이렇다.
야고보의 권면이다. 교회는 병든 자를 위해 장로들을 청할것, 장로는 그를 위해 병낫기를 기도할 것, 그리고 서로가 죄를 고백할 것을 말했다. 교회는 병의 원인을 제공하는 죄사함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예수치유의 공동체이다. 성경은 목사나 장로를 모두 장로라고 부른다.
예수는 완전히 고치셨다.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진 교회 역시 사람을 완전히 회복시키는 사명을 받았다. 예수의 말씀이 교회 안에 자리 잡고, 더러운 말과 거짓과 위선이 떠날 때, 교회는 치유의 능력을 회복한다. 교회의 언어는 진실로 사랑과 공의이다.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예수의 이름으로 완전히 회복될 수가 있다. 이 말은 영과 혼과 육은 분리되지 않았고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영은 회복되었으나 혼은 그대로 있고 혼은 회복되었으나 데 질병은 그대로 있으면 완전한 치료가 아니다.
영이 먼저다. 내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진다고 했다. 영은 말씀을 들음으로 혼은 기도와 전문 상담을 통해서 그리고 육은 장로들을 청하고 서로 죄를 고백함 으로써 전체적이고 완전한 치료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교회의 구원은 사람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데 있다. 이것이 공동체의 목표다. 바울은 그래서 말한다. 주의 십자가의 공로 안에서 영과 몸이 흠 없이 보전 되어 그 날까지 나아가라고 했다. 예수는 개인과 교회를 다 고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세상을 고치라는 부탁과 함께 다시 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예수는 다 고쳤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