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송영일 목사) – 하나님의 나라를 어디에 감춰 두셨을까?
이스라엘에 “사해”(死海)라는 호수가 있는데 영어로 Dead Sea라고 한다.
그 이유는 소금물이 너무 짜기 때문에 거기에는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한다.
염도가 너무 높아서 수영을 하면 그대로 둥둥 떠올라 편하게 누워서 책도 읽고 카톡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타고가다가 사해바다 곁에 주차를 하고 사람들이 편안하게 둥둥 떠서 신문도 읽고 책도 읽고 전화를 주고받은 모습을 구경하다가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외치며 허우적거려도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는 거였다.
마침 저 멀리서 한 사람이 큰 소리를 친다.
“두 손을 높이 드세요. 허우적거리지 말고 두 손을 드세요.”
두 손을 들자 그대로 바다위로 둥둥 뜨는 게 아닌가!
우리가 주님 앞에 두손을 들고, 완전히 항복하고, 손을 펴야 살 수 있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겁을 먹고 허우적거릴수록 몸부림치면 칠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간다.
사는 길을 알지 못하면 겁을 먹고 자기 힘으로 몸부림치면 자꾸 짠물을 먹을 뿐이다.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지만 따를 수 없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때마다 이의를 제기하고, 반항하고, 거부하고, 긴장하며 갈등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요13:34)는 새계명을 주셨다.
누가 이 땅에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당연히 거부하거나 갈등할 수밖에 없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용서한 것 같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라”(고후3:10)고 명령하신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한계에 부딪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결국 “우리를 사랑하는 방편이라”는 걸 이해하고 믿으면 나의 모든 이의와 반항과 거부와 긴장과 갈등을 포기하게 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의 동기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일단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나의 뜻을 포기하고 그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 때에 순종은 타의적으로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능동적인 순종이다.
이집트에 전해오는 이런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신이 사람에게 행복을 주실 때, 바로 주시지 아니하고 천사에게 맡겨서 너희가 갖다 주라고 명령을 하셨다.
천사들이 불순종하는 인간들에게 행복을 주라는 말씀에 질투가 나서 행복을 숨겨두기로 했다.
천사들끼리 의논을 하는데 한 천사가 “바다 깊은 곳에다 숨겨둘까?”
그랬더니 다른 천사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재주가 많아서 잠수부들을 통해서 그거 다 찾아 낼 거야” 그러면 “아주 높은 히말라야 꼭대기에다 갖다 감춰놓을까?”
“아니야, 사람들은 모험심이 많아서 등반대들을 통하여 끝까지 뒤져서 행복을 다 찾아 낼 거야”
이때 다른 천사가 말하기를 “사람들은 자기 머리만 믿고 교만하여 자랑하며 살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가슴에다 두면 못 찾을 거라” 고 했다.
천사들이 세상에 와서 가만 보니까 정말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모든 일을 하려고 했다.
자기 머리만 믿고 자랑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슴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며 살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어디에 감춰 두셨다고 하셨는가?
“하나님의 나라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천국은 네 마음속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셨다.
그렇다. 천국은 가장 가까운 마음 속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천국이 이뤄지면 가정천국이 이뤄지고 사회천국이 이뤄지고 이 세상이 천국으로 변화된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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