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송영일 목사)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아주 오래 전 학창시절에 읽었던 “스콧 핓제럴드”(Scott Pitzerald)의 소설 “위대한 게츠비” (The Great Gatsby)라는 책이 있다.
이 소설에 보면 도무지 사랑받을 조건이나 가치조차 전혀 없는 데이지(Dazie)를 향한 변함없는 게츠비(Gatsby)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사랑을 받을 가치라는 것은 오직 사랑하는 이가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 사람이 날 아프게 해도, 그 사람이 날 슬프게 해도, 그 사람이 많은 결점을 지녔는데도, 그 사람의 좋은 점이 없어도, 세상 사람 모두가 제발 그만두라고 해도 상대방조차 제발 날 사랑하지 말라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한 여인을 지극히 사랑한 게츠비가 위대하다고 해서 이 책 이름이 “위대한 게츠비”라고 부른다.
그러나 “위대한 게츠비”의 사랑은 짝사랑이었다.
데이지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랑받을 만한 조건도 가치도 없는 데이지(Dazie)를 사랑한 게츠비(Gatsby)는 누구의 사랑과 같을까?
하나님의 지고한 사랑을 상징한다.
우리에게 아무런 사랑받을만한 조건도 자격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 온 몸을 피 흘려 대속의 제물이 되어 목숨 바쳐 사랑하셨다.
그 희생의 사랑이 너무나 지고하시기에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그건 짝사랑이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일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Ransom)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의 속전(Ransom)이 되셨다.
속전(Ransom)이란 “잃어버린 것을 값을 치르고 되 사온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가 우리의 속전이다.
예수님의 핏 값이 치러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죄로부터 해방되고 사망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얻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소원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신다.
구원은 자신의 노력이나 힘으로 스스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자력(自力)이 아니라 타력(他力)이다.
타력의 원천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오직 한 분 중보자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자신을 속전으로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속(救贖)하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대속제물이 되심으로 구원하셨다.
모든 사람이 지은 죄를 대신하여 죄에 대한 대가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하셨다.
목숨 바쳐 사랑하셨다.
목숨 바쳐 사랑한 사랑보다 더 지고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구원의 길이 되신다.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베드로 사도는 군중들을 향하여 이렇게 설교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이처럼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며, 진정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선언하신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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