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하나님의 선택 (누가복음 5:1-11)

어떤 사람이 한적한 길을 따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무엇인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남의 집 정원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아무렇게나 생긴 대리석이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찾아 가서 말했습니다. “저 돌을 주실 수 없겠습니까?” 주인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저렇게 쓸모없는 돌을 가져다 무얼 하시려고요?” 그가 말했습니다. “저 안에 예술이 갇혀 있군요. 그것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요” 그 사람은 그 돌을 가지고 가서 최고의 조각품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바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최고의 예술가 미켈란젤로 입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쓸모없는 대리석 같은 사람을 선택해서 깎고 다듬어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원하는 사람이 아닌 필요에 의해서 부른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아브라함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 자신이 원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잘 살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75세입니다.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오래 살던 곳을 떠나라. 아버지 친척 모두 뒤로 하고 떠나라. 자식도 없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고,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엄청난 제안입니다. 아브라함은 걱정하지도 않고 떠나 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아닌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너도 이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우리 아버지의 자식이지만 영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한 아브라함의 축복입니다.

2. 베드로
형제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와 보라. 내가 메시야를 만났다” 안드레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에게 옵니다. “지금은 시몬이지만 장차 든든한 반석이 될 것이다” 베드로가 원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고 나서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예수님이 베드로가 고기잡이하는 갈릴리에 오십니다. (눅 5:1-11) 그 날 따라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날입니다.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소득이 없어서 아침에 그물을 정리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배를 사용하기를 청합니다. 배를 빌려서 모여 있는 무리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는 다른 어부들도 있지만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해서 얻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혼자서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어서 다른 배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을 합니다. 두 배에 가득 찬 고기가 잡혔습니다.
순간 베드로는 많이 잡은 고기에 놀라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하신 예수님 때문에 놀랍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따나십시오” 감당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무서워하지 말아라. 앞으로는 사람을 취하리라” 마태복음엔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밤새도록 수고해서 한 마리도 잡지 못해서 화가 난 상태이거나 실망한 상태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르긴 해도 그 때는 얕은 데가 고기가 잘 잡힐 때 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믿기가 힘든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와 정반대로 하라고 하시기에 잘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예수님 말씀대로 한 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동안 자기기 잡아오던 방법을 버리고 ‘말씀에 의지합니다’ 그리고 그물을 내립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런 자세입니다.

베드로의 발견
두 배에 가득 찬 고기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고기 잡기 전에는 예수님을 선생이라고 불렀습니다. 고기를 잡은 다음엔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라도 예수님이 누구신가? 나는 누구인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도 수제자가 됩니다. 베드로가 원해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요구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그렇게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돌덩어리 같은 베드로를 깎아서 다듬어서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정원에 있는 돌을 가지고 조각해서 멋있는 작품을 만든 미켈란젤로처럼, 예수님이 다듬어서 쓸모 있는 제자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 뿐 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마찬가지입니다. 깎고 다듬어서, 훈련시키고 연단시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시겠다고 합니다. 욥의 고백처럼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아멘
베드로는 성격이 아주 급한 사람입니다. 앞장서기 좋아합니다. 나서기 좋아합니다. (마 26:31-35) 예수님이 제자들을 모아 놓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만일 할 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은 은 30냥에 팔리게 됩니다. 결국 제사장 가야바의 뜰로 끌려 갑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심히 통곡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 깎고 다듬어서 사용하시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위하여 사람을 선택 하여서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베드로는 흩어져서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하여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하여 보내고 그 편지를 읽는 성도들에게 힘이 되어 주기를 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순교함으로써 그의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간 제자였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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