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3-17)

힘들고 아픈 고통스러운 한 해가 지나갑니다. 반면에 좋은 일 기쁜 일이 많았던 한 해도 지나갑니다. 이제는 새로운 날이 다가옵니다.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새 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새것은 좋습니다. 새것은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게 합니다. 새 집, 새 차, 새로운 사업, 새 친구 모두 호기심을 자극하게 합니다. 새해도 우리에게 호기심을 자극 합니다. 신앙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모두에게 호기심을 자극케 하는 좋은 날이 다가옵니다.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육적인 것도 새것이 좋지만 영적인 것도 새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것은 선택(option)이 아니고 필수입니다. 반드시 새것이 되어야 합니다. 왜? 새것이 안되면 삶이 새것이 안되고 천국의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1.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신약에 169번 등장)
주로 사도 바울이 많이 사용한 말입니다. 자신의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란 말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을 의미합니다. 나와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인가 입니다. 죽어야 새것이 됩니다. 아름다운 나비는 곤충과 벌레들이 죽어서 변하여 새것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매미도 벌레가 죽어 변하여 새것이 된 것입니다. 벌레가 변해서 매미, 나비가 되는 것 같이 온전히 새로워진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체험하고 경험합니다. 옛 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옵니다. 옛날의 욕망이 변하여 거룩한 하늘의 욕망으로, 세상의 명예와 물질의 욕망이 거룩한 것으로 변합니다.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로 채워져야 합니다. 자비, 사랑, 겸손, 희생, 온유, 충성, 봉사 즉 예수님의 삶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대단한 이력, 학력이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로마의 시민권 (식민지 상태) 당대 최고의 랍비 가말리엘의 제자. 난지 8일 만에 할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베냐민 지파. (초대왕 사울) 바리새인, 율법에 흠이 없는 자. 열심히는 교회를 핍박한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고 나니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보통 죄인도 아니고 괴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고전 15:22)

2.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미 이전 것은 지나갔음에도 이전 것을 흘러 보내지 못하고, 옛것에 사로 잡혀 삽니다. 그래서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왕년에는” 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 열심히 했으면 지금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안하면서 옛날 타령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옛날에 아무것도 안했으면 지금부터는 열심히 해야 합니다.

3.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려면;
1) 회개 해야 합니다.
회개는 옛사람을 벗어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옛사람을 벗어나겠다는 것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소리높여 외칩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하여 침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회개” “잘못 가던 길에서 돌아선다” “뉘우친다” 옛사람의 길에서 새로운 사람의 길을 향해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2) 화목해야 합니다. (20, 18절)
하나님과 화목 (20)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예수 믿기 전 옛사람은 하나님과 관계가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 그리고 이웃과의 화목 (18)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웃과 화목하라고 하십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마 5:9)
3) 거듭나야 합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3,24)
4)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갈등도 있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새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에게 미쳐 살았던 사람입니다.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13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14절) 강권이란 ‘팔을 비틀어서 꼼짝 못하게 하는’ 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14절) 우리가 말하는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죠. 좋아한다는 말은 나를 위한 표현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을 위한 표현입니다.

● 어느 간호사의 간증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위해 시집가기를 거절하고 평생을 희생한 어느 간호사의 간증 이야기입니다. 동생 자신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고, 주변 사람도 좀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오직 동생을 위해서만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세상 떠나기 전 그 이유를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사춘기 시절 수혈을 받을 필요가 있었는데 특이한 혈액형이어서 피를 구하기 어려웠는데 마침 어린 남동생이 같은 혈액형이라 자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수혈이 끝난 후 이 남동생이 입원실에서 의사선생님에게 뜻밖에 “선생님 저는 언제 죽게 되나요?” 이렇게 물었답니다. 이 소년은 수혈의 의미를 충분히 모른 채 죽기를 각오하고 누님을 위한 수혈에 임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후에 전해 들었을 때 이 누이는 그때 하나님께 “저는 평생을 제 동생을 위해 살겠습니다” 라고 서원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 결심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결혼도 포기하고 동생만을 위하여 살았다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을 위하여 죽었기 때문에 자신도 예수님을 위하여 죽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미쳐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에 미쳐 있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미쳐 있었습니다. (행 26:24) 바울이 전도하다가 죄수로 잡혀 왔으면서도 자기를 심문하는 총독 베스도에게 전도를 합니다. 그는 바울에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했구나” 라고 말 합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무력과 과학, 철학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무력도 과학도 철학도 한 영혼을 구원하거나 변화시킬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마다 변화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랑을 전하는 일에 미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면,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지난날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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