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나를 본 받으라 (빌립보서 3:17-21)
일본에는 배용준 최지우 송승헌 등 한류 스타들의 열성 팬클럽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팬클럽에 가입하려면 적어도 그 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를 50번 이상 보아야 할 뿐 아니라 시험에서 합격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어떤 시험인가? 드라마를 돌리다가 갑자기 멈춘 후 다음 사람의 대사를 연기해야 합니다. 피아노 위에 얹혀 있는 소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런 엄격한 자격을 갖추어야 저들이 좋아하는 배우의 팬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라가는 제자로서 얼마나 성경 말씀을 암송하고 있는가? 제자의 자격을 갖추어 그 반열에 설 수 있는가?
바울이 눈물로 호소합니다.
천국 시민답게 살아라 (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로마 시민권 가진 것에 만족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하늘나라 시민권 가진 것이 감사하고 하늘나라 시민답게 살라고 합니다.
1. “나를 본 받으라” 입니다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나를 본 받으라” 바울은 나를 본 받으라. 본 받는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멘토”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 성공적인 인생을 산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주변에는 항상 좋은 스승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곁에는 좋은 성품과 인격으로 지혜와 지식으로 믿음과 사랑으로 인생을 가르쳐주었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격려해준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한 사람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려면 그를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던지 격려하고 밀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에는 ‘멘토’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성공적인 인생을 살도록 바르게 세워주고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인생을 잘 살아가도록 격려하며 좋은 의견을 던져주는 사람을 멘토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돕는 좋은 조언자 상담자 후원자를 멘토(mentor)라고 하고 멘토의 활동을 멘토링(mentoring)이라고 합니다. ‘멘토’라는 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떠나면서 자신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가르치고 돌보아 달라고 한 친구에게 맡겼는데 그 친구의 이름이 바로 멘토였습니다. 멘토는 친구인 왕이 전쟁에 나가면서 왕자 텔레마코스를 잘 길러 달라고 부탁 받았는데 왕자의 선생님으로 때로는 친구처럼 상담자로 때로는 아들처럼 생각하고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왕이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기까지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지만 왕자는 아주 훌륭한 왕으로 손색이 없게 되었습니다. 왕이 전쟁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오면서 보니 백성들이 아주 풍요롭게 잘 살고 자기가 통치할 때보다 좋은 나라가 되었는데 백성들의 말을 들어보니 새로운 젊은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나라를 잘 이끌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들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왕의 친구인 멘토라는 왕의 친구가 왕자의 아버지처럼 선생으로 상담자로 격려자로 조언자가 되어주어 훌륭한 왕으로 키워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멘토’라는 이름은 현대인들에게도 새롭게 부각되어서 “신앙과 인격으로, 믿음과 사랑으로, 지혜와 지식으로 한 사람을 이끌어주는 조언자, 도움을 주는 자, 영향을 미치는 자” 라는 말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아가려고 하면 인생을 함께 의논하고 신앙과 인격과 성품을 위하여 상담할 수 있는 멘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의 멘토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혹은 자기를 멘토로 삼고 살라고 합니다. 즉 나를 본 받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서울의 어느 큰 교회 목사님에게 한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질문을 합니다. “왜 목사님이 되셨습니까?”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잘 믿으려고요”이 말도 저는 백번 공감합니다. 목사가 되고 나니 더 잘 믿으려고 애를 씁니다. 심지어 몸이 아파도 죽을 병이 아니고 몸을 거동만 할 수 있으면 예배에 빠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난주만 해도 그랬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질 않고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나왔습니다. 왜 목사이니깐요. 저 역시도 예수님을 본 받는 사람을 살려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살아 갈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전 11:1)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4:16)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거듭 거듭 강조합니다. 나를 본 받으라.
본이 되라는 말은 진실하라. 겉과 속이 같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그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나 성도는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된 사람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함량 미달입니다. 성경을 많이 모른다, 믿음이 적다, 이런 것들 다 이해합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하는 것은 함량 미달입니다. 특히 목사님 교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본이라는 것은 틀이라는 말입니다.
본을 뜬다는 말입니다. 대량 생산되는 물건들은 틀에서 뽑아내는 것입니다. 틀 속에 집어 넣어서 똑같은 것이 나오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도 똑같은 모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받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갈 4:12)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살전 1:6) 바울이 예수님을 본 받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교회나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한결같이 나를 본받는 자가 되어라고 합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어떤 책에도 “나를 본 받으라”는 사람은 없고 그런 책도 없습니다. 다만 성경에서만 발견된 귀한 말씀입니다. 뿐 만 아니라 바울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 제일주의 였습니다. 항상 하나님 먼저 예수님 먼저 교회 먼저의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2. 바울의 겸손함을 본 받으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병든 환우에게 손을 얻으면 치유되는 신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행 19:11-12)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랑을 하고 싶어 합니다.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합니다. 나 역시 나도 모르게 네 자랑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내가…” 정말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감추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자신을 소개할 때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나”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죄인 중에 괴수” 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극히 겸손한 사도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예수님을 닮은 바울.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빌 2:6-7) 이런 예수님의 마음은 소유한 바울 사도는 “모든 일에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할 것을 눈물로 호소합니다. 1) 천국 시민답게 살아라 2) 예수님을 닮는 자가 되어라 3) 교회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라.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예수님만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