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칼럼(류복현 목사) – 그리스도인의 고향 (마태복음 5:10-12)

● ‘카나리아’라는 새에 대한 이야기
영국에 사는 어떤 부자가 카나리아 한 마리를 사서 발목에 금가락지도 끼워주고 머리에 꽃으로 만든 관도 씌워 주면서 20년 동안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어느 날 그 부잣집에 불이 나서, 새장의 문이 열리는 바람에 그 카나리아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부자는 오랫동안 정 들었던 그 카나리아를 찾기 위해 사방에 수소문하였습니다. 2개월 후 처음 카나리아를 샀던 마을에서 카나리아를 발견했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 부자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의 집으로부터 무려 4,800km(3000 마일) 떨어진 곳 이었기 때문입니다.
카나리아는 20년의 긴세월이 흘렀는데도 자기의 고향을 향해 날아간 것입니다. 그 부자는 자기 집으로 돌아온 그 카나리아를 더는 키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카나리아를 새장에서 꺼내어 다시 고향으로 날려 보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동물의 ‘귀소본능 homing instinct)’ 입니다. 이 귀소본능은 비단 카나리아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닌, 꿀벌이나 제비, 연어도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귀소본능이 뛰어난 동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동물들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떠한 어려움일지라도 자신들이 나고 자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고향이 있고, 영혼의 고향이 있지요. 육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천국 백성이기에 고통도 핍박도 참고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목숨을 구걸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순교 할 수 있음에 감사드렸습니다. 어떤 핍박에도 감사 했습니다. 오늘 예수께서 산상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0)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1)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12)”

왜 핍박을 받습니까
자기의 잘못으로 받는 핍박입니다. 이럴 때 그것은 핍박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처벌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핍박이란 좋은 일을 한 것에 대하여 나쁜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고, 처벌은 나쁜 일을 한 것에 대하여 좋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핍박이 아닌 것들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의 잘못된 행위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은 성경이 말하는 핍박이 아닙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벧전 2:19-20)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라”(벧전 4:15) 그리스도인이 살인하거나, 도적질하거나, 악한 일을 하거나, 남의 일에 간섭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처벌이지 성경이 말하는 핍박이 아닙니다.
맹신적이고 미신적,광신적인 신앙행위로 비난받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핍박이 아닙니다. 맹신적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덮어 놓고 믿는 것을 말합니다. 미신적이란 바르고 옳은 삶보다는 복 받는 것에만 치우치는 믿음을 말합니다. 광신적이란 미칠 정도로 지나치게 믿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때 핍박이라고 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마 5:11)
성경에서 말하는 핍박이란 그리스도 때문에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타협하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갈등도 충돌도 핍박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분명 갈등, 출동과 핍박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의 흐름을 따라 헤엄쳐 갈 땐 충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류해서 헤엄쳐 갈 때는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빛입니다! 빛은 필경 어두움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리스도인은 소금입니다. 소금은 필경 부패와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렇게 일러두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딤후 3:12)

그러면 왜 핍박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이 됩니까?
1) 그리스도로 인해 핍박 받을 정도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막연히 많은 것을 소유하면 행복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소유했을 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을 만큼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만났을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죽을 만큼 사랑하는 일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이 소명입니다. 행복한 삶은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주고픈 사랑하는 사람만 만나도 행복한데 주님을 사랑하기에 핍박을 받을 정도에 이른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2) 그리스도인에게는 고향을 가는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도 귀소본능이 있어 우리의 고향이 천국이기에 우리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핍박도 달게 받습니다. 그리고 큰 상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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