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정순광 지국장) – 삼강행실도가 제작된 동기와 내용



By 정순광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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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세종때 편찬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인터넷에서 발췌, 정리한다. 삼강행실도는 조선 세종 16년(1434) 직제학 설순(偰循)등이 세종의 명에 따라서 조선과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부자·부부의 삼강에 거울이 될 만한 충신·효자·열녀의 행실을 모아 그림과 함께 만든 책으로 3권 3책의 금속활자 인쇄본이다.
세종 10년(1428) 무렵, 진주에 사는 김화(金禾)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인해 엄벌하자는 주장이 일어났지만 세종은 엄벌이 능사가 아니고 아름다운 효풍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서적을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항상 늘 가까이 읽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를 간행하기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아들의 아버지 살인사건이 삼강행실도를 만들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 “권부(權溥)의 효행록에 우리나라의 옛 사실들을 덧붙여 백성들의 교화용으로 삼고자 하였다.”라며 이 책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규장각 도서의 세종조 간본에는 세종 14년(1432) 맹사성 등이 쓴 전문과 권채가 쓴 서문이 있으며, 그 뒤 성종·선조·영조시대의 중간본이 전해오고 있다. 특히 성종 21년(1490)에는 이를 언해하여 그림 상단에 새겨 넣은 언해본을 편찬함으로써 세종 때 것을 “한문본 삼강행실도”라고 하고, 성종 때 언해한 것을 “언해본 삼강행실도”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조 때 중간본은 강원감영에서 간행되었는데, 강원감사 이형좌(李衡佐)의 서문과 간기가 보태져 있다. 내용은 삼강행실 효자도와 삼강행실 충신도 및 삼강행실 열녀도의 3부작으로 이루어진다.
삼강행실도의 밑그림에는 안견의 주도 아래 최경·안귀생 등 당시의 알려진 화원들이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동국신속삼강행실 찬집청의궤’에 안견의 그림으로 전한다는 기록이 있고, 이러한 갈래의 작업에는 작업량으로 볼 때 여러 화원이 참여하고 실제 그림에서도 몇 사람이 나누어 그린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구도는 산·언덕·집·울타리·구름 등을 갈지자형으로 가늠하고, 그 가운데 마련된 공간에 이야기의 내용을 아래에서 위로 1~3장면을 순서대로 배열하였다.
윤리를 강조해온 유교적 배경에서 삼강행실도는 이즈음의 조선시대의 자녀들에게 읽힌 좋은 도서였을 것으로 보인다. 도덕적 잣대가 흔들리고 있는 요즘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