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조의석 목사) – 천상병 (1930-1993)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요즈음 짧고 울림이 있는 시들이 가슴에 다가온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도 그런 시 가운데 하나이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긴 설명이 아니어도 그가 한 생을 살다가는 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불행했다고 말하지 않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기억하고 하늘나라로 간다는 고백이다.

사실 그의 삶을 비추어 보면 원망이 더 많을 수 있다. 대학 친구와 막걸리 몇잔 나누고 막걸리 몇 병값 받았다는 이유로 무시무시한 동백림 간첩사건으로 몰려 6개월 동안 무참한 전기고문을 당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는데도 그는 원망보다 가슴에 평화와 자유를 품었다.
이미 고등학교 때 시<공상>으로 문예지에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하고, 서울대 상대에 들어갈 만큼 수재였지만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원이 되어 돈을 버는 일보다 자유로운 삶으로 시를 쓰는 길을 택했다.
고문을 당하고 나서는 거의 하반신을 쓸 수 없을 만큼 불구가 되었지만, 친구 목순복의 동생 목순옥과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헌신적인 아내의 도움으로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평생 막걸리 한잔을 즐기며 때로는 친구들에게 막걸리 한병 값을 세금으로 거두어 술을 마시며 시를 쓰는 그를 사람들은 괴짜 시인으로 불렀지만 사실은 그 영혼이 하늘에 맞닿은 천재시인이었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 천상병 <행복> 중에서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 천상병 <나의 가난은> 중에서

그는 진정 가난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이다. 하루 한 잔의 커피와 담배와 버스 값만 해결되면 행복해하는 초연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가난은 내일 일을 걱정해야 하는 불편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라고 말하며, 무한한 자연과 햇빛 앞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평등한 것이어서 그의 가난은 떳떳한 것이었다.

그는 63세의 나이로 하늘로 돌아갔다.
잠시 왔다가는 이 세상은 소풍길이다. 욕심 버리고 살면은 그 소풍길은 아름다웠다고 고백할 수 있다.
이제 부터라도 하늘로 돌아가는 날 후회할 일 하지 말고 하늘에 별처럼 내 이름이 새겨지고 거기에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안될까 ?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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