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칼럼 (조의석 목사) – 배우 오영수 (오일남) : 우린 깐부잖아, 깐부끼리는 네꺼 내꺼가 없는거야
명언은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로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말이지만 요즘처럼 시대가 빨리 변하는 사회에서는 지금 현재 사회의 모양을 꼭 찝어내는 말이 될 수 있다. ‘깐부’ 라는 표현은 요사이 세계적으로 빅히트를 한 한국의 황진혁 감독이 만든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깐부라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는데 나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작가 안드레아가 오징어 게임을 보고 나서 깐부가 한국말이냐고 물어 와서 찾아보게 되었다. 깐부는 게임을 하면서 딱지나 구슬을 서로 나누는 짝꿍이라는 은어이다. 오징어 게임 6화 에서 이정재와 오일남이 홀X짝 게임을 하며 마지막 남은 한 돌을 상대방에게 주며 “깐부끼리는 네꺼 내꺼가 없다”는 그의 표현이 세계적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남을 이겨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네꺼 내꺼가 없는 짝궁이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멋진 삶이다. 거기에는 진정한 나눔이 있다는 뜻이니까.
배우 오영수는 50여 년 동안 주로 연극무대에서 활동한 77살의 노배우인데 자기를 비우는 무소유를 추구하는 불교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스님역을 많이 한 배우가 되었다. 오징어게임에서 그는 주연은 아니지만 내공이 쌓인 긴 호흡의 대화와 느린 손동작 하나까지도 명연기가 되어 늦은 나이에 인기 배우가 되었다.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았는데 인생의 승자란 각 자의 길에서 묵묵히 일해온 사람이 누구를 이기지 않아도 자기 삶의 1등이 아니겠느냐고 하였다.
깐부라는 말이 알려진 후 같은 이름을 가진 치킨회사에서 그에게 광고를 찍자는 제의가 들어 왔는데 거절했다. 돈이 싫어서가 아니라 깐부라는 말이 치킨집 광고와는 안맞는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라는 작품에 나그네와 꽃 스토리가 있는데 소개하자면 산길을 걷던 나그네가 예쁜 꽃을 봤을 때 젊은 사람은 그 꽃을 꺾어 가져오고, 중년은 꽃을 아예 캐서 자기 집 정원에 심고, 나이가 들면 그 자리에서 본 뒤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마음을 가진다고 한다. 그도 일흔 살이 넘으니 그렇게 욕심 부리지 않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50여 년을 20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가난한 연극 배우로 살았으니 욕심 부릴수도 없었을 것이다.
극 중에서 456명의 게임 참가자 중 1번이었던 오일남은 평범한 노인인줄 알았는데 마지막 9회에서 그 게임을 설계한 엄청난 부자이고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사람임이 밝혀진다. 그는 주인공인 성기훈 (이정재)를 부른 자리에서 돈이 너무 없어도 인생이 힘들고, 돈이 너무 많아도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뒤늦게 찾아온 인기에 대해 우연한 기회에 행운처럼 온게 아니라 지금까지 주어진 작은 제 몫을 따라 흔들리지 않고 한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한 하나의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황동혁 감독을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오징어 게임’에 출연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각자의 길에서 그렇게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해 온 사람들이야말로 모두 자기 삶에서 1등이 아니겠느냐는 그의 말에 공감이 된다. 나에게 주어진 한번 뿐인 고귀한 삶을 남과 비교해 열등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 자기 인생길에서 주어진 작은 몫을 부지런하게 살아 지켜내면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각자의 삶에서 1등이 되도록 채워주신다고 믿는다. 6화 마지막 장면에서 성기훈이 자기를 속인 줄을 알면서도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마지막 남은 돌을 쥐어주며 “우리는 깐부잖아” 하는 노인의 모습에서 죄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신 예수님을 생각했다.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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