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동그라미 세 개 – 이수진 교수 (남부개혁대학교 미술상담학)


몇 년 전,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 남편과 함께 부흥집회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계획은 좋은 것이며 우리의 깨어진 마음을 치유하시고자 하신다고 간증을 한 후, 각각 마음의 아픔을 그림으로 표현해 보라고 했다. 한국 교회에 가서 집회중에 그림을 그리게 한 것이 처음이라 특히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참 궁금했다.
어색해하는 순간도 잠깐, 오랜만에 거머쥔 연필과 도화지를 보자 젊은이나 노인이나 다 동심으로 돌아가 모두 열심히 집중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픔을 표현하라고 했는데도 불하고 몇몇 이들은 그림을 그리라고 한 것 자체에 마냥 감동한 듯 그들의 얼굴은 마치 유치원생이 소풍을 나온 것처럼 상기되어 있었다. 모두가 그림을 다 그린 후 나는 기도를 인도했다. “주님, 이 그림들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주님, 주님이 우리 각 사람을 향해 품으셨던 아름다운 꿈들이 우리들의 죄로, 혹은 다른 이들의 죄로 인해 더럽혀지고 깨어졌습니다. 이 시간 우리의 깨어진 꿈들과 마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고쳐 주시옵소서.”
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을 다 개인별로 상담할 수 없어 남편과 나는 따로 나누어 꼭 상담을 받아야 할 몇 분을 선별해 짧은 상담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중 나이가 지긋한 한 권사님이 다리를 절뚝이며 내 상담실로 힘들게 들어오셨는데, 그 분의 그림이 참 특이했다. 도화지를 가득 채운 다른 사람들의 그림과는 달리, 이 흰 머리 권사님의 그림은 딱 동그라미 세 개였다. ‘이게 뭐야?’ 난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권사님은 무슨 점이라도 보러 오신 것처럼 내게 이 그림의 숨은 뜻을 찾아보라는 식으로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계셨다. 참으로 난감한 순간이었다. 칠순이 넘으신 할머니께, ‘여긴 무당집이 아닙니다’라고 설교를 할 수도 없고…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넌지시 물었다. 권사님은 그냥 한숨만 쉬셨다. 아이고, 이렇게 답답할 수가…
이런 때는 주님께 묻는 것이 최고다. 미술심리 치료와는 다르게 기독교 미술상담은 이렇게 주님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비밀무기다. 이것은 무당이 점을 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의 마음을 드러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린 그림이다. 이 동그라미는 권사님의 기도다. 나는 속으로 재빨리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님, 이 권사님이 왜 이런 그림을 그렸나요? 주님은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이분과 소통하고자 하세요?” 그런데, 나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내 마음속에서 이것들은 이분의 아픈 관계라는 깨달음이 왔다.
주님이 답을 해 주신 것 같았다. 조심스럽게 나는 물었다. “권사님, 이 동그라미가 권사님의 일생에서 권사님을 가장 아프게 했던 세 사람인가요?” 라고 하자, 권사님의 고개가 툭 떨어지더니 바닥에 눈물 구슬들이 무수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권사님, 이 가운데 동그라미에 힘이 제일 많이 갔어요. 이 분이 권사님을 제일 아프게 했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동안 묵묵부답이던 권사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했다.
“네, 이게 내 남편이에요. 수십 년 나를…” 하며 흐느껴 우셨다. 권사님의 남편은 자신을 보호해 주기는커녕 늘 시어머니 편을 들며 자신을 괴롭혔단다. 그리고 한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비밀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옛날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딸아이를 낳았다고 시어머니는 아기를 자기 품에서 빼앗아가 버렸다고 했다. 그 후로는 아기를 다시 볼 수 없었고,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시어머니보다 남편이 더 미웠단다. “내 아기, 내 아기!” 칠십 여년을 자기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기 이야기를 하며 권사님은 스무 살 갓 넘은 새색시로 돌아가 바닥을 치며 통곡하고 있었다.
‘하나님, 이제 전 무슨 말을 해요? 이런 비극을, 이런 죄의 비밀을… 이젠 형사상 고발할 수도 없는데 이 권사님을 어떻게 도와드려요? 주님, 이런 인간들의 죄를 어떻게 해요? 주님, 이런 사람들도 용서해야 해요?’ 나는 권사님의 손을 쥐고 함께 울었다. 그러고는, “권사님, 그런 죄악을 저지른 시어머니와 남편을 용서하시겠어요?” 라고 물었다. 권사님은 지긋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강사님이 아까 그랬잖아요? 용서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라고. 그러니깐 해야지 뭐.” 참, 순수하게도 그 권사님은 주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나는 내 남편의 죄를 용서합니다. 나와 내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시어머니가 아이를 빼앗게 방관한 것을 용서합니다.” 라며 너무도 힘들었던 과거의 보따리를 주님께 던져 드렸다. 연이어 그분은 그 시어머니도 함께 용서했다.
그러고 보니, 다리를 절던 권사님의 육체적 고통도 마음의 아픔 때문에 더 그랬던가 싶어, 난 주님께 이 권사님의 마음과 육체의 질병도 함께 고쳐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렇게 품에서 떠나갔던 권사님의 딸아이도 이제는 주님의 품에 있다는 사실을 권사님이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처음 상담실에 들어왔던 권사님의 어두웠던 얼굴이 기도 후에는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동그라미 세 개를 가지고 들어왔던 그 권사님의 마음 깊은 곳에 남편, 시어머니, 그리고 빼앗겼던 딸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 권사님은 한평생 품어왔던 그녀의 한을 주님께 내어 드리고 용서를 통해 힐링을 얻었다. 조금은 덜 절뚝거리며 방을 나가는 권사님의 뒷모습을 보며 그동안 그녀를 보며 아파하셨을 우리 주님의 저렸던 마음이 느껴졌다.
우리의 아픔을 대신 지시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가셔야 했던 주님의 십자가가 그날따라 유난히 이해되었다. 우리 중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죄와 비극을 주님은 그 십자가를 통해 해결하신 것이겠지. “주님, 우리의 마음에서 아픔을 놓고 이제 주님의 손을 쥐고 가게 하옵소서.”

*이수진 교수 약력:
풀러신학교 심리학가정학석사
조지메이슨대 미술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