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김 엘리사) – 콩나물 비빔밥

불금 저녁 초대로 콩나물 비빔밥을 먹었다.
솔솔 김이나는 흰 쌀밥 위에 듬뿍 올려진 콩나물,
그 위에 매콤 칼칼한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은 통깨 고소한
양념 간장을 뿌리고 살랑살랑 숟가락으로 비벼가며 뚝딱 한 그릇을 비웠다.
몇 년 만에 먹어보는 이 칼칼하고 아삭한 고향의 맛~~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 소리에 한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가 슬며시 웃고 있었다.

명절이 다가올 때 즈음이 되면,
우리집 큰방 윗목에는 늘 콩나물 시루가 놓여있었다.
엄마는 회색 토기 시루바닥에 볏짚을 깔고 불린 콩을 올려놓고 검은 광목천으로
시루를 덮은 다음, 물을 담은 그릇 위 V자로 된 나무 다리를 걸치고
그 위에 시루를 올리셨다.
우물에서 갓 길어 올린 물 몇 바가지를 시루속의 콩에게 살살 뿌리시며
엄마는 기도처럼 주문을 외우셨다.
“콩아 잘 자라거라! 어서어서 쑥쑥 잘 자라거라~~!!”
나도 엄마를 따라 하루에도 몇 번이고 시루속에 물을 주며 중얼중얼거렸다
“콩아 잘 자라거라! 어서어서 쑥쑥 잘 자라거라~~!!”
그러다 어느 날 나는 깜짝 놀라곤 했었다
언제 자랐는지 가지런한 키에 머리를 맞대고
시루 가득 소복하게 올라와 있는 콩나물을 보면
너무나도 신기하고 예쁘기만 하였다.
엄마는 소복한 콩나물을 살금살금 몇 웅큼씩 뽑아 귀한 날마다 콩나물
반찬준비를 하셨고, 나는 다시 부지런히 물을 주곤 했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
엄마는 우리를 그렇게 키우셨다
아무리 물을 주어도 물 한 방울 고이지 않는 밑 빠진 독처럼
물은 그냥 모두 흘러내렸지만 콩나물은 어느새 소복히 자라
시루속에 한가득 머리를 총총 세우고 있었다.
모두 흘러 내려가버린 물처럼 헛수고인 줄 알았는데, 콩나물은 자랐고 나도 자랐다.
나를 키우신 엄마를 따라 나도,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
무럭무럭 쑥쑥 아이들을 키웠다.

“아~~배불러! 넘 맛있어요! 넘 행복해요!”
열심히 달려온 한주… 배부른 금요일 저녁이 보름달처럼 부푼다.
흑백 사진 속 엄마 얼굴이,
소복한 언니들 굽어진 모습이, 고향집 콩나물 시루 한 가득
손을 흔들며 웃고 있다.

2023.12.1(금) 가을 햇살 가득한 주말 저녁

김 엘리사 (chalet7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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