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라루 선장과 마리너스 수사

By 변성주 기자
kjhou2000@yahoo.com

1950년 6.25 한국전쟁 발발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사이에는 수많은 피와 눈물의 역사가 엄연히 존재한다. 얼마 전 흥남철수 주역인 메러디스 빅토리호 故 레너드 라루 선장을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하는 절차가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그동안 가려져있었던 그의 삶을 재조명 해본다.
미 가톨릭 주교회의는 한국전쟁 당시 1만4천여 명의 피난민을 구하며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이룬 흥남철수의 주역 레너드 라루 선장, 훗날 마리너스 수사의 ‘성인(Sainthood)’ 시성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탁월한 덕행이나 순교로 신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들을 ‘하느님의 종’과 ‘복자(Venerable)’ 등의 절차를 거쳐 ‘성인’으로 추대한다. 그 첫 절차로, 지난 6월 17일 춘계총회에서는 성 베네딕토 수도원의 ‘하느님의 종(Servant of God)’ 마리너스 수사의 시성 절차 안건이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전쟁이 끝난 후 라루 선장은 1954년 뉴저지 뉴튼 성 베네딕토 수도원에 입회해 40년간 마리너스 수사란 이름으로 겸손하게 수도생활에만 정진하다가 2001년 87세를 일기로 선종했다.
흥남철수작전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던 영웅이었지만, 라루 선장은 자신의 과거를 철저히 숨기고 살았다. 당시 일등항해사였던 로버트 러니 뉴욕주 해상민병대 제독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어렵사리 마리너스 수사를 찾을 수 있었는데, 주변에 그가 크리스마스 기적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겸손을 택했다. 마리너스 수사는 생전에 이렇게 회고했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습니다.”
2000년 그가 속한 뉴저지 뉴튼수도원이 수사 부족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한국 왜관수도원에서 7명의 수사를 보냈다. 당시 수사 중 한 명인 안토니오 강 신부는 라루 선장에 의해 목숨을 구한 피난민이었다. 그의 성인 추대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것은 기적이라고 주장했다. 2차 대전 중 왜관수도원의 뿌리였던 당시 덕원수도원과 함흥교구는 뉴튼수도원으로 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세월이 흘러 마리너스 수사가 선종하기 직전 폐쇄 위기에 있었던 뉴튼수도원이 거꾸로 왜관수도원의 극적인 도움으로 구출된 사실 또한 드라마틱하다. 마리너스 수사는 병세가 위독해졌을 때 “한국 사람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2001년 라루 선장의 장례 미사에 우연히 참석했던 재미동포 사업가 안재철 씨는 그의 삶에 큰 감화를 받고 흥남철수 관련 <생명의 항해>라는 책을 펴냈다. 또 장례미사에서 만난 당시 일등항해사 로버트 러니 씨와 기네스 기록등재를 신청했고, 결국 2004년 9월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기적의 배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자유는 결코 쉽게, 거저 얻은 것이 아님을…숭고한 희생과 기적이 함께 공존했다는 사실도 꼭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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