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조의석 목사) – 시인 신달자 :‘나 아프다’는 말을 아름다운 노래로 하는 것, 그것이 시이다

시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대한 신달자 시인의 대답이다. 참 쉽다. 내가 아프다는 말을 ‘아이고 아파, 나 죽어’ 왜 이리 힘들어’ 하지 않고 아름다운 노래로 말하는 것.
그것이 시이다. 물론 쉽지 않지만 사람은 마음 먹기에 따라 한탄이나 설움을 시의 언어로 승화시 킬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김지하 시인은 젊은 날 치열하게 군부독재를 비판했지만 나이가 성숙해지고 난 뒤 반항의 언어는 사라지고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생명의 언어로 사물을 담는 것을 느꼈다. 자기가 생명을 바칠 것처럼 힘차게 저항했던 그것 마저도 다 내려놓고 담벼락에 핀 꽃 한송이를 소중히 여기고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노래했다.

약간 촌스런 ‘신달자’ 라는 이름을 가진 시인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삶의 고통 속에서 축복을 발견하는 시들을 써왔다. 1964년 ‘여상’으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재등단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의 나이 서른 다섯에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한 달 만에 깨어난 남편은 몸을 가누지 못했다. 막내 딸이 겨우 세 살일 때였다.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펜 대신 보따리를 집어들고 동대문 시장을 오갔다. 그 와중에 쓰러진 시어머니까지 병간호하며 마흔 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펴낸 수필집 ‘백치애인’,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빚을 겨우 청산할 만큼 힘든 젊은 날을 보냈다.

2000년 결국 남편을 떠나 보내고 그의 딸이 말했다. “엄마, 이제는 행복할 자격이 있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 먹고, 제일 좋은 옷 입고, 제일 좋은 집에서 살라고, 엄마는그럴 자격이 있다고…”
그런데 지금은 제일 좋은 음식 안먹어도 배부르게 삽니다. 제일 좋은 옷 안 입어도 행복합니다. 시인은 이제 세 딸과 세 사위와 한 터위에 네 집을 짓고 서로 복도로 연결하여 살고 있다.

교육열이 남달랐던 시인의 어머니는 딸을 공부시키기 위해 도시로 보냈다. 버스 정거장에서 어머니는 세 가지 당부를 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라. 여자도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여자로서 행복해라.” 시인은 “엄마는 기역 자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나에겐 가장 좋은 스승이었다”고 했다.

“날 때부터 아무 고난없이 살고서 죽을 때, ‘아, 행복했다!’ 하는 사람 없어요. 그렇게 산 사람은 행복이 뭔지 절대 몰라요. 나는 젊었을 때 부러운 여자가 참 많았어요. 남편이 잘해주고, 돈도 많고, 좋은 집 살고, 아들 척척 낳고. 그런데 이제는 부러운 여자가 없어요. 살아보니 내가 부러워했던 여자들 가슴 속에도 다 못이 박혀 있더라고요.”

시는 무엇인가?
삶의 고통을 풀어내는 언어, 고난을 꽃으로 슬픔을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로 피워내는 고백, 삶의 어느 자리에 멈추어서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하여 드리는 기도, 그런 것이라고 여겨진다.

조의석 목사
우드랜드 빛사랑교회 담임목사, 수필가.
저서: 수필집 <블루보넷 향기>(2010), 시집 <거듭남>(1991)
832-212-3339
Ischo6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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