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이근형 목사) – 새해에도 또 기도할테다

새해의 문이 열렸다. 또 다시 기도할 테다. 기도 안에 성경을 담고 인생을 담는다. 말씀 따라 빌다 보면 눈물도 감사도 절망도 희망도 만나게 된다. 응답이 있거나 없어도 계속 기도할 테다. 새해 결심이었으면 한다.
기도 이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다고 예수가 말을 했을 때는 그것은 세상을 이기는 화두였고 그의 새해 덕담같은 것이었다. 세상을 이기는 방식은 그것 말고는 없다는 뜻이다. 인생 꼼수로 살다 보면 꼼수만 늘어난다. 스스로 잘 났다고 살다 보면 남는게 없다. 장사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남는 것이 없을 때가 있었던 것과 비슷같다. 땅과 하늘을 얻으려면 이기는 방법을 아는 게 좋다. 이것은 나의 후손들에게도 큰 유산이 되고 우리의 삶의 이유가 될 수 있다.
다윗이 전쟁의 신이었다면 예수는 영적 전쟁의 신이었다. 예수는 완전히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의해 마치 하나님의 아바타처럼 살았던 하나님의 외아들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예수는 하나님을 잘 알았다. 아니, 예수만이 하나님을 알았던 외아들이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이 예수의 전지전능이 되었고, 예수의 전지전능이 제자들의 전지전능이 되도록 그의 삶을 제자들에게 다 바쳤다. 그 나머지는 예수에게는 모두 유혹이었을 뿐이다.
예수는 너희 중에 선생되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현직교사나 교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적인 말씀을 가르치는 랍비라고 부르는 선생들처럼 되지 말라는 말이다. 위대한 선생 예수는 제자와 같아졌고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큰 일을 하게 했다. 그것이 예수의 리더정신이었다.
영적 지도자는 시대의 영웅들과는 가는 길이 다를 뿐이지 영웅들을 인정한다. 영적 지도자는 자신의 성공에 그렇게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영적지도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살다 가는 것이 그의 지도력의 전부다. 모세의 꿈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게 그의 전부였다. 느보산 꼭대기에 올라 가나안 땅을 구경만 했다. 사무엘도 그랬다. 사무엘은 사람이 왕이 되는 제도를 처음부터 원치 않았다. 끝내 반대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왕을 세웠다. 인생 맘대로 안된다. 기도해야 하는 이유다.
에스라는 제2의 모세라는 별칭을 가진 율법의 전문가요 학자였다. 모세가 말씀을 전했던 인물이었다면 에스라는 말씀을 백성들에게 풀어 적용시켰던 아론의 16대 후손이었다. 1000년을 넘게 이어온 율법을 풀어내는 제사장이었으니 가히 그는 필객의 붓을 가진 완전한 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결말도 울다가 끝났다. 에스라가 죽어도 하나님은 일을 계속하신다. 인생대박을 꿈꾸지 말라는 말이다. 대박의 주인은 주님이다.
종말의 길! 예수를 그래서 우리가 주목한다. 성경에 따라 예수는 너무도 위험한 긴장의 날들을 매일 보냈다. 그러나 그 예수가 평안을 잃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전부를 카피한 11 제자들이 남겨졌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제자들의 부활로 이어졌다. 이들은 결국 제자가 아니라 예수를 대신하는 사도들이 되었다. 사도들은 말과 글을 쓰는 학자였다기 보다는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시작과 끝도 성공도 실패도 은혜도 심판도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아는 것이 능력이다. 여기에는 그래서 인간적인 감정이나 계산이나 두려움이나 그런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장 귀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빛나는 삶인가를 잘 아는것이다. 정답은 이것이다. 기도하고 살았다는 것이고 흥해도 망해도 모두 주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부인할 자유마저도 없었다는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영적 스승이고 영적 지도자라고 한다. 그러니 믿음은 언제든지 현실로 분석되지 않는다. 인생을 뛰어넘는 그 힘이 믿음이었다.
인생이 그럼 뭐냐 물을 수 있다. 하나님께 직접물어라. 그것이 기도다. 그리고 가만히 있지 말고 하나님의 입장을 대신하여 싸우는 것이다. 이 싸움은 정말로 죽어도 살고 살아도 영원히 죽지 않는 싸움이 된다. 피흘리는 싸움이라고 했다. 그 싸움이 기도의 싸움이고 말씀의 전쟁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싸움을 싸운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주가 하나님 됨을 알라고 모세는 말했다. 그가 지팡이를 들었을 때 홍해 바다가 갈라진 것이다. 얼마나 정교하게 그 일이 진행되었는지는 출애굽기를 일곱 번 정도는 읽어야 이해 된다. 그것이 영적 싸움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실력을 알면 인생이 부들부들 떨릴 수 있다. 믿음의 사람은 그 떨림을 배우는 사람이다. 배우기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전력을 다 쏟는 사람이다. 기도한다고 응답이 그렇게 쉽게 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기도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에 기도하기가 피곤하고 싫증이 날수록 더 기도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다.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기도한다. 이 기도는 수 백 수 천년 동안 입증된 것이고 성경에서 해오던 기도이다.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기도의 시간에 모든 육신의 힘이 소진된 사람은 하나님이 그 나머지는 알아서 다 해결하신다. 엘리야의 기도가 장대비를 몰고 왔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원수의 나라의 모든 군대를 일거에 몰아냈다. 이런 근거들은 기도의 끝자락에서 생긴 일들이다. 우리를 계속 기도하게 만든다. 기도를 쉬는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 바울도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는데 인생손해 보지 말라는 뜻이다. 사무엘도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을 것이라고 했을 때 그의 기도가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도가 내게 만족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기도가 오염된 것이다. 그 기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오염된 기도는 오래갈수록 좋을 것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일생이 빛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빛나는 일생이란 이웃들의 기도 제목을 찾아내어 나의 기도 골방에서 기도의 불을 지피는 일을 말한다. 그것이 나의 현실을 뒤집는 가장 빠르고 가장 쉬운 역동적인 힘이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내 친구는 중병으로 사투를 벌이다가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또 한 친구는 아내를 일찍이 잃었다. 인생 그리 길지 않다. 사별도 있고 이별도 있다. 나의 계산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산이 현재와 영원을 결정짓는다.
2024년 갑진년 용띠 해이다. 성경에서 용은 깨끗하게 묘사되어 있지 않다. 뱀과 용과 거짓 선지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이 공중에서 세상을 조종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으니 단단히 붙어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한해를 함께 갔으면 한다. 새해에도 또 기도할테다! 눈이 있으면 읽고 귀가 있으면 들을 수 있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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