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송영일 목사) – 천상의 예배처럼 드리자

계시록 4장에서는 천국의 커텐을 잠깐 열고 천국에서 진행되는 예배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하늘나라로 이끌려 간 사도 요한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보좌의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싼 천상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의 영광을 목격했다.
얼마나 황홀했겠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왜 예배의 애절한 감동이 없을까?
그냥 그리스도인으로서 의무감으로 참석하지는 않을까?
그 이유는 “예배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AW 토져)고 생각한다.
도대체 예배란 무엇일까?
첫째로,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영광이다.
요한계시록 4장의 첫 부분에 등장한 천상예배는 하늘문을 열어 주시고 보여주셨다.
사도 요한은 하늘의 보좌를 보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감격이다.
이처럼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
집 뒤뜰에 두 그루의 감나무가 있다.
그런데 뭔가 감에 자주 Scratch를 내는 것이었다.
Scratch가 난 감은 영락없이 2-3일 후에는 붉은 홍시로 변하고 다음날에는 홍시가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동물이 그렇게 하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깜짝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집 나간 들고양이 한 마리가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표정이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표정이 역력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고양이가 그렇게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즐거워하는 표정을 처음 보았다.
그렇게 신나는 표정으로 감나무를 살금살금 타고 올라가더니 웬일인가, 빨갛게 익은 홍시를 어찌나 냠냠거리며 맛있게 먹는지,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그때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러 갈 때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나리라는 기쁨,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모습으로 성전을 향하여 나가야 하지 않을까?
마치 배고픈 들고양이가 먹이를 앞에 두고 신이 나서 즐거워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러 갈 때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예배를 갈망하는 마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자세,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풍성한 임재를 체험하며 성령 안에서 우리가 즐거워하고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둘째로, 예배는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일이다.
요한계시록 4장에는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제자를 합한 숫자이다.
그러므로 이십 사 장로는 신구약의 모든 교회와 구속받은 성도들을 상징한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11)
“합당하다”는 영어로 ”Worthy”(가치있다)는 예배라는 Worship에서 나온 말인데 이 단어는 두 가지의 뜻을 함유하고 있다.
먼저 예배는 우리들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뜻이다.
왜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일까?
구원의 은혜와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충분히 합당하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받으실 만한 합당가치가 있을까?
주님은 만물의 창조주시요 통치자이시요 우리의 구속자이시기 때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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