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송영일 목사) – 찢기고 상한 손을 바라보자
유명한 윤리학자였던 존 하워드 요드(John Howard Yoder)가 쓴 “예수의 용서의 정치”라는 책에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여기 이 십자가에 자기 원수를 사랑한 사람, 자기의 의가 바리새인의 것보다도 더 큰 사람, 가장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난해진 사람,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몽땅 내어 준 사람, 자기를 희롱하고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용서하는 사람이 매달려 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나라로 향하는 우회도로가 아니다. 십자가는 우리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 나라 그 자체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찢기고 상하는 고난을 통과하셨고 죽음을 통과하셨다.
등어리는 채찍으로 찢기고 머리에는 가시관으로 깊이 찔리고 손과 발에는 대못에 박히고 옆구리에는 창에 찔려 마지막 남은 물과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아 내셨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동화 “황제와 청소부”라는 책에 보면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한 왕이 잔치를 베풀어 많은 사람을 초청을 해 놓고 이런 질문을 했다.
“왕이 있는 우편 자리에는 누구를 앉게 하겠느냐?”
대답이 없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했다.
“손이 제일 험한 분을 내 옆으로 데려오너라.”
그래서 신하들은 손이 험악한 사람을 찾으려고 모두 손을 만져보며 인사하고 악수해 보았지만 모두 손이 부드럽고 반들반들했다.
그러다가 구속에 앉은 한 분의 손이 짐승의 손 같고 투박한 발바닥 같았다.
사람들은 손이 매우 거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어디서 오셨습니까?”
“얘, 저는 청소부입니다. 청소하다가 늘 흙을 만지고 돌을 만지고 쓸다가 손이 얼마나 거칠어졌지요.”
“그래요? 황제가 당신을 찾으십니다.”
황제는 그의 손을 보면서 “당신은 과연 예수님의 손을 닮았군요.” 하고 거치른 손을 가진 청소부를 황제의 옆에 앉았다는 이야기이다.
무슨 말인가?
예수님은 30년 동안 열심히 목수 일을 하신 거친 손을 가지셨다.
그리고 인류를 위해서 흘리신 보혈의 못이 박힌 찢기고 상한 거친 손이었다.
십자가 위에 대못에 박힌 고난의 손이었다.
예수님은 어머니를 보시고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아들의 못박힌 아들을 보라고 하셨다.
주님은 오늘도 나를 향하여 “나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위하여 진 이 십자가, 내가 너를 위하여 흘리는 피, 내가 너를 위하여 대못이 박힌 손과 발을 보라고, 내가 너를 위하여 흘린 이 고난과 이 부끄러움과 고통을 보라.”
골고다 십자가의 주님,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찢기고 상한 주님의 손을 이렇게 경험해야 한다.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y)는 사형 선고를 받고 광장에 세워져 공개총살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죽음 앞의 처형대에 선 그는 “만약 여기서 살아나간다면 인생의 단 1초도 허비하지 않으리라.”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사형수를 향하여 총을 막 쏘려는 순간, 누군가 “황제의 명이요!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명되었소!”라고
황제가 보낸 메신저가 외쳤다.
사형은 면제받았으나 힘들고 4년간이라는 긴 시베리아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황량하고 추운 시베리아 유배생활은 모든 것이 멈추었다.
지독한 혹한에 입술이 부르트고 손이 동상에 걸려 찢기고 상했다.
그럴 때마다 4년 동안 시베리아 유배생활에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찢기고 상하신 못박힌 손 만을 바라보았다.
고통스러울 때마다 자신을 사형에서 구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생각했다.
그런 고난을 통과하면서 유배생활 중에 불후의 명작인 “죄와 벌”이라는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동상에 걸려 찢기고 상한 손으로 이러한 명작을 쓸 때마다 예수님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독한 죄인이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소설로 쓸 수 있었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