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송영일 목사) – 예수님은 나에게 있어서 과연 누구인가?

예수님은 누구인가?
이 질문은 신앙고백의 핵심이다.
2000년 전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 오셨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을 했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은 미친 사람이라”고, “로마의 평화를 방해하는 선동자라”고,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신성 모독자라”고 악의적인 고백을 했다.
확실히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다.
알지 못했으므로 신앙고백을 할 수 없었다.
신앙고백을 하지 못했으므로 구원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며 복음을 전했던 사도들은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알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던 로마의 백부장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그리스도인들을 집집마다 수색하여 죽이고 감옥에 가두었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 회심하여 “세상의 구주이며, 세상의 소망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그들은 올바른 신앙고백을 했으므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의 “Ich und Du(너와 나)”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평생 자신의 방에 예수상을 걸어 놓고 “모든 참된 삶은 만남에 있다(All real living is meeting with Jesus)”고 했다.
그는 예수님과 만남의 관계를 강조했다.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최고의 축복이다.
예수님과 만남의 관계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참된 신앙고백을 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께서 3년 반동안 제자훈련을 시키시고 최종적으로 제자들의 신앙고백을 확인하고자 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은 이 고백을 그토록 듣기 원하셨다.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마16:16)라는 고백을 듣고 너무너무 기뻐서 베드로를 칭찬하셨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길을 갈지라도 이제 제자들이 넉넉하게 자기 인생들을 복음을 위해서 살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기뻐하셨다.

예수를 잘 믿는 어떤 형제님이 어느 날 천국을 갔다.
천국문을 막 들어가려 하는데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물었다.
“형제님이 여기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무엇입니까?”
“……………?”
갑자기 생각지 않던 질문이라 한참동안 어리둥절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베드로 사도가 다시 질문을 했다.
“당신의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잘 됐다 싶어 사도신경을 줄줄 외워 댔다.
그랬더니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사도신경 말고 참된 신앙고백을 들려주십시오.”
“아니, 저는 예배 때마다 목사님이 신앙고백을 하자고 하면 우리는 모두 사도신경을 외웠는데 그게 신앙고백아닙니까?”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형제님은 다시 되돌아가셔서 확실한 신앙고백을 하고 오시기 바랍니다.”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이다.

재림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대에서 우리를 향해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질문을 하신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우리의 인생이 걸린 질문이다.
이것을 대답해야 신앙이 시작이 된다.
신앙고백은 구원받은 사람의 증거이다.
신앙고백은 성령받은 사람의 증거이다.
신앙고백은 천국문을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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