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송영일 목사) – 내 생각을 절대화하지 말라
목회자로서 성도님들의 신앙생활을 보고 서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모습을 종종 본다.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말에 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힘을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도하지 않게 말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다. 왜 그럴까? 결론은 자기중심적 관념 때문이다. 내 생각에 내 뜻에 내 마음에 좋은 말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방은 상처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상대방을 전혀 생각하고 배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은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옳은 생각이라고 믿는다.
얼마 전 너무 하잖은 일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고 사이가 나빠진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혼자서 씁쓸히 웃었던 적이 있다.
어떤 성도님은 예전에 맛있게 먹었던 중국집 짬뽕이 맛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그 집 짬뽕이 맛없다고 하며 수긍해 주려고 하지 않으려 한 것이었다. 자기에겐 분명히 맛있는데 왜 맛없다고 그러냐며 무시당했다고 느꼈고, 그러면서 주고받은 말들이 점점 사나워지고 말았다. 내가 맛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맛이 있어야 할까? 내가 옳으면 다른 사람들도 옳아야 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사람은 말을 하기 전에 이런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오해하지는 않을까, 행여 마음 상하지는 않을까를 한 번쯤 생각해 보고 말을 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이 없으면 그저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
고정관념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 여러가지를 늘 듣고 배우고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 절대화된 관념으로 자리잡게 되고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에 계속 그렇게 사용하다가 결국 절대적 고착관념으로 자리잡는다. 고착관념(固着觀念)을 영어로 “fixed idea, fixed view point, fixed logic”이라고 한다. 본의든 아니든 마음이 어떤 한쪽 대상에 쏠려 끊임없이 고정적으로 의식을 지배하며, 모든 행동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관념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의식이나 표상(表象)에 거듭 떠올라 그 사람의 정신생활을 지배하고 행동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관념을 심리학의 용어로 고정관념이라고도 한다. 고정관념은 병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관념이다.
고정관념이 지나치면 강박관념이 생길 수 있다. 과거에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에게 피해를 당한 후로부터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면 즉각적으로 피해의식과 경계의식이 작동한다. 그래서 전라도 경상도라는 지역적 편견이 발생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념에 사로잡힌 심리적 혼란상태를 강박관념(强迫觀念)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은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거나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적대시하기도 한다. 또한 피해를 입은 대상에 대한 집착, 융통성의 결여, 특정한 대상에 대한 계속적인 의심같은 특성을 지니는 반면에 지나치게 윤리·도덕성에 집착하게 된다.
성경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는가? 그들의 지나친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그들은 성전을 하나님만큼 거룩한 신적인 위치에 두고 섬겼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사용되는 성전을 바라보시고 예수님께서 진노하시며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고 하자 예수님을 선성모독죄를 걸어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종교적 고정관념의 눈으로 가려져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3일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어찌 볼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의 고정관념은 다윗과 같이 강력한 왕의 모습으로 이스라엘의 왕의 보좌에 앉아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처절하게 고난을 당하시다가 마지막 남은 물과 피를 다 쏟아 부어주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고 “우리가 기다리는 메시아라면 그럴 수 없다”고 여겼다. 왜? 그들의 종교적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그들의 종교적 고정관념은 장차 오셔서 고난당하실 메시아의 모습을 기록한 이사야 53장에 있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거부하고 눈이 가려져 보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야 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이란 단지 “찰나”(刹那)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갈 것이다. 스스로가 세상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인간들은 이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매사에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려 한다. 누군가 당신의 생각이 잘 못되었다고 말하면 자존심을 상해한다. 자신을 한번 돌이켜보자. 무표정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단 1분의 시간 속에서도 수많은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잣대가 없으면 모든 사람이 가진 각자의 고정관념 때문에 인간관계에 혼란이 온다. “저기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질문을 하면, 각자가 자기생각에 맞는 답을 하고 우겨댄다. 그러나 만일 줄자가 있다면 잣대를 통해서 저기서 여기까지는 3피트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의 의견을 한꺼번에 단일화시킬 수 있다. 그 잣대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Canon이라고 말한다. 고정관념과 생각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절대적인 해결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로 일제히 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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