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송영일 목사) – 갈등(葛藤)을 해결하려면

갈등은 칡(葛)과 등나무(藤)가 서로 뒤엉키듯 서로 복잡하게 얽혀 화합하지 못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덩굴식물인 칡은 원래 동아시아가 원산지이지만 최근 미국 남동부를 뒤덮어 심각한 외래종이 되었다.
휴스턴 외각 지역을 가면 엄청난 칡넝쿨이 왕성하게 읽혀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성장이 워낙 빨라 미국에서는 “1분에 1마일씩 자라는 덩굴”이라는 별명을 붙었다.
등나무 역시 옆으로도 잘 퍼져 나가는 덩굴식물로서 인터넷에 보니까 캘리포니아 시에라 마드레에 있는 등나무는 축구장의 절반 정도나 퍼져서 무게가 자그마치 250톤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시대가 바뀌면서 갈등(葛藤) 현상이 갈수록 더욱 다양하고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다.
개인의 물론 사회적인 갈등 그리고 국가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어간다.
현시대의 Diversity(다양성)는 그만큼 갈등도 다양하게 나타난다.
Diversity(다양성)은 Globalism(세계주의)을 만들어 갈등도 Global하게 다양하게 일어난다.
갈등은 사회구성원들을 극명하게 다양한 갈등을 만들고 있다.
최근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 갈등은 남녀 갈등, 종교 갈등, 가치관 갈등, 이념 갈등, 빈부 갈등, 세대 갈등은 참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분출되는 갈등이 유혈분쟁으로 치닫는다.
갈등은 결국 폭력과 전쟁으로 발달될 수밖에 없다.
사회 각 분야와 국가와 국가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기심 때문이다.
이기심은 자기우선주의이다.
자기우선주의는 타인과의 양보와 배려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자연이 관계가 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갈등이 고조되면서 개인이나 사회와 국가 간의 방어벽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성경적으로 보면 인간역사의 첫 갈등은 에덴동산의 인간과 하나님과의 갈등이었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갈등이 시초였다.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써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갈등이 시작되었고 기쁨의 동산에서 분열되어 갈라지고 깨어지는 관계에 이르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원수관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런 갈등의 관계 원수관계를 해결하려고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자기를 희생하여 피흘려 죽으심으로써 사죄의 은총을 베풀어 주여야만 했다.
그것을 한 마디로 결자해지(結者解之) 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 자신이 만든 인간이, 하나님 자신이 만드신 동산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법(法)때문에 생긴 갈등의 문제와 사망의 문제와 원수관계의 문제를 친히 해결하셨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과 하나되게 하셨다.
이것이 갈등(葛藤)의 해결법이다.
이것을 1+(0)=1의 법칙이라고 한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기본수 “1”에 나의 숫자 “0”을 합할 때, 둘은 결국 “1”(갈등이 해결되는 하나됨)이 될 수 있다.
만일 아담이 하나님 앞에서 “I am nothing”의 존재로 순복하였더라면 갈등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불순종은 “I am something”이라고 뭔가 되려고 생각할 때 일어난다
그렇다. 우리가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내가 먼저 “I am nothing”(0)이 될 때 절대적인 수 “I am everything”(1)이 될 수 있다.
“I am nothing”(0)은 상대방 앞에서의 희생이며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내 자신의 존재이다.
그것이 없이는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그것이 없이는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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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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