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린도전서 15:9-10)

찬송가 43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204장 예수로 나의 구주삼고, 424장 나의 생명 되신 주 등 23곡이 우리 찬송가에 수록된 찬송시의 주인공이 바로 여류작가 크로스비 (Fanny J. Crosby)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찬송시를 쓰신 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녀는 어려서 가정부의 불찰로 눈의 시력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할머니가 들려주는 성경이야기를 들으면서 신령한 찬양시를 많이 썼습니다. 크로스비가 아홉살 때 드렸던 기도의 내용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나에게 시력을 허락해 주신다 해도 나는 안 받으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밝은 눈을 주실 터인데 세상에서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한 눈으로 주님의 얼굴을 보렵니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멀게 한 그 사람을 만난다면 그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불평과 원망 대신 감사와 자족의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은혜는 능력입니다. 변화하는 하는 힘입니다. 사람을 바꾸어 놓는 힘이 은혜입니다. 사상을 바꾸고 가치관을 바꾸고 인생관을 바꾸고 운명까지 바꾸는 것이 은혜입니다.
마틴 루터의 전기를 보면 이런 회고가 나옵니다.
“내 인생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 마디 마디 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광산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꿈은 장차 내가 커서 광산촌의 읍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대학에 가서 학사가 되게 하셨고 수도사가 되게 하셨고 마침내 파계한 수녀와 결혼하게 하셔서 교황권과 맞서 싸우게 하셨다. 나의 걸어온 지난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루터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변하지 않는 옛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새로운 사람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옛 모습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교회에 방해자가 되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기 전에는 교회의 훼방꾼이였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였다고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 중에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만삭되지 못한 자 같은 자기에게도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감히 사도로 칭함 받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가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됨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울의 고백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모릅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모습들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바라봅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이미 받은 은혜를 깨닫고 있습니다. 율법으로 바리새인이요, 흠이 없는 자라. 열심히 교회를 핍박한 사람입니다. (빌 3:5-6) 그런 그가 지금은 교회를 세우는 자요, 예수님을 목숨 걸고 전하는 자입니다. 모진 고통 속에서도 35년 동안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감옥에 갇히기도 매를 맞기도 하고 풍랑에 배의 파손을 당하기도 하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대단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렸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자랑거리를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지식(학위), 가문, 신앙적 자랑 등을 다 버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다고 했습니다.

“바울의 겸손함”

“다른 사도들 보다 더 열심히 한 것은 사실이나,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다.” (10절)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랑, 자기 의를 내 세우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입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 온 바리새인과 세리를 보십시오. “하나님.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하지도 않았습니다. 불의한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간음하지도 않았습니다. 일주일 이틀은 금식을 했습니다. 소득의 십일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기 뒤에서 기도하는 세리와는 다른 사람입니다.” (눅 18:9-13) 이런 모습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같이 기도하러 갔던 세리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예수님이 말씀 하십니다.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의롭다함을 받고 내려갔겠느냐?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8:14) 세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겸손한 것입니다. 당시에 세리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한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였습니다. 왜 우리가 겸손하지 못합니까? 내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얼마나 허물이 많고 죄가 많은가를 잘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 ‘자기만’ 모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 는 말이 있듯이 죄인이었고 지옥에 살았던 우리의 과거를 그리스도인들이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모두 겸손해야 합니다. 물고기의 IQ가 0.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수준이 옆의 동료가 낚시 바늘에 걸려 발버둥 치면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물고기는 그것을 모른채 낚시 바늘에 걸린 미끼를 물고 끌려 올라갑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인 지능지수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만하다가 얻어 맞는 것을 보고도 겸손하지 못합니다. 징계를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계속 교만합니다. 영적 IQ 문제입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지옥에 있던 죄인이었습니다.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나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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