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칭찬과 격려 (잠언 25:11)
1. 고슴도치와 천재 수도사 이야기
인간관계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추운 겨울 밤에 함께 있는 가시 돋친 두 마리의 고슴도치와 같다고 했습니다. 추운 겨울밤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서로의 따뜻한 체온입니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기 위해서는 서로 가까이에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이들은 가까워질수록 서로 찔리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가 힘이 듭니다. 서로 찔리기가 싫어서 멀리 떨어지면 추운 겨울에 얼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으면 살지만 서로 상처를 줍니다. 우리는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혜로운 말이 필요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 필요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상처를 주지 않고 칭찬과 격려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입니다. 서로를 인정해주는 말입니다.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 말입니다.
천재라고 소문난 수도사에게 한 방문객이 찾아와 물었습니다. “당신은 소문대로 천재입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요” 수도사는 아주 당당하게 말합니다. 방문객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또 묻습니다. “왜 천재입니까? 무엇 때문에 당신이 천재입니까?” “나는 보는 능력이 있습니다” 방문객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이 계속 묻습니다. “무엇을 본다는 것입니까?” “나는 누에고치 안에 있는 나비를 봅니다. 그리고 알 속에 있는 독수리도 봅니다. 뿐 만 아니라 이기적인 인간 속에 있는 선한 모습을 봅니다. 죽음 안에 있는 생명도 봅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 속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실패 속에 있는 사람 속에서 성공함을 봅니다. 부정적인 사람 속에서 긍정을 봅니다. 고난과 고통 속에 계신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갑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이 함께 살고, 직장에서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도들이 함께 살아갑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고슴도치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따뜻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미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을 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모습만 보지 말고 그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보십시오. 그래서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고, 인정해 주고,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의 칭찬과 격려
빌립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에게로 온 벳세다 사람 나다나엘을 처음 만나실 때였습니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며 예수님에 대하여 무시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처음 본 순간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함이 없도다” (요 1:47) 나다나엘을 깜짝 놀랐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예수님이 자신을 알아보는 순간 그리고 예수님의 인정의 말씀에 감격 했습니다. 그 날 이후 평생토록 나다나엘은 감동 속에서 주님을 따르고 충성하였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돌로매라고도 합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합니다. 예수님의 칭찬의 말에 순교자가 됩니다.
가버나움 마을에서 한 백부장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집의 하인이 중풍으로 고통 당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하인까지 챙기는 그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고 함께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이곳에서 말씀만 해 주셔도 우리 집 하인이 났겠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합니다. 예수님이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마 8:10) 로마군대 100명을 거느리는 장교입니다.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그를 향해서 극진한 칭찬을 하십니다. 자기 집 하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을 보시고 하신 칭찬입니다.
3. 경우에 합당한 말 (칭찬, 격려, 인정의 말)
그러니 칭찬과 격려가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바르게 만드는 것은 차가운 질타보다 따뜻한 칭찬과 격려입니다. 칭찬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필수 영양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함과 아름다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격려하고 칭찬해 줄 때 우리는 더욱 선하게 되어집니다.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사람은 칭찬을 받는 만큼 달라집니다. 착하다고 칭찬하면 착해집니다. 예쁘다고 칭찬하면 예뻐집니다. 실험 연구 보고에 의하면 심지어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식물도 칭찬해주고 쓰다듬어 주면 생기가 넘쳐흐르면서 쑥쑥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사람이야 말할 필요가 없질 않겠습니까?
사람은 격려와 칭찬을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칭찬은 잘한 일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격려는 잘못했지만 잘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잘못했는데 잘했다고 하면 교만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칭찬은 잘해야 합니다. 칭찬과 격려를 받아보신 적이 있으시죠? 그 짜릿한 감동을 잊을 수가 없지요? 격려하고 칭찬하는 것이 습관화되고, 생활화 되도록 하십시다. 아멘
우리 한국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칭찬에 인색한 편입니다. 자식도 속사랑으로 키워야지 겉으로 사랑을 표현하면 망친다는 엄격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칭찬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칭찬은 사람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줍니다. 칭찬은 새로운 일을 하게 합니다. 칭찬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칭찬을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모두 긍정적인 성품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꾸중이나 비난보다 먼저 칭찬을 해주고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칭찬과 격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룩한 사역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영혼을 빛나게 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칭찬과 격려에서 나옵니다. 이건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건 명예가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재능이 없어도 못 배워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룩한 사역입니다. 영혼을 살리고 영혼을 춤추게 하고 영혼을 빛나게 하는 일 입니다. 이 일은 평생 살면서 목숨을 걸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꽃처럼 피어나게 하고, 보석처럼 빛나게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별처럼 반짝이게 할 수 있습니다. 칭찬과 격려를 하면서 자신도 변하고, 칭찬과 격려를 받는 이웃도 변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