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청지기의 삶 (베드로전서 4:7-11)

1. 우리의 신분 (10절)
나는 누구인가?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 은사를 받은 대로 살아가는 청지기입니다. (고전 12:8-10)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지식의 말씀을, 믿음을, 병 고치는 은사를, 능력 행함을, 예언함을, 영들 분별함을, 각종 방언 말함을,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우리는 은사를 받은 청지기입니다.
2)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대로 섬기는 청지기입니다. (롬 12:6-11)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결론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십니다.
3) 선한 청지기 (steward) 비행기의 승무원. 심부름꾼. 우리 모두는 다 청지기입니다. 목사, 전도사, 권사, 집사, 성도 모두 다 청지기입니다.
4) 서로 봉사하라 (우리의 할 일)
사람이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는 것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좀 더 참을 걸, 좀 더 즐겁게 살 걸, 좀 더 베풀 걸” 봉사는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우리의 선한 일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봉사하고 섬기는 삶이야말로 최상의 가치를 사는 삶이요 행복한 삶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한 청지기는 자기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서 봉사하면 됩니다.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11절) ‘공급하다’ ‘하나님이 아낌없이 주는 것’ 이란 의미입니다. 즉 교회의 유익과 덕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봉사하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아낌없이 능력을 주실 것을 믿고 힘껏 봉사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봉사는 내 힘으로나 내 재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실패했습니다. 가이사라 빌립보에서의 위대한 고백은 예수님의 큰 칭찬을 받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서 실수를 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하자 예수님을 가로 막습니다.“주님 그리 마옵소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한 순간에 상황이 바뀝니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가 갑자기 사단이 되고 맙니다. 내 힘으로 하려니 그렇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립니다. “검을 검 집에 넣어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리라” 예수님이 베드로를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누구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내 생명을 누가 빼앗는 것이 아니고,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요 10:18) 봉사나 헌신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은혜로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힘이 듭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렇게 사랑받는 제자였지만 결국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맙니다. (마 26:75) 훗날 베드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봉사하였을 때 많은 병자를 고치고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40년 동안 앉은뱅이로 살아 온 예루살렘 성전 미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던 자에게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면서 성전에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오순절에는 한 번의 설교에 3000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순교의 사명까지 감당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진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선한 청지기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봉사하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봉사하는 청지기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봉사하는 청지기입니다. 나아가 선한 청지기는 서로 봉사하기를 기뻐합니다. 피차 사랑을 나누고 짐을 덜어주며 봉사합니다. 가치관을 소유가 아닌 나눔에 두고, 지배가 아닌 섬김에 두는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 받은 청지기들입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은혜로 각자에게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따라서 그 일이 무엇이든지 간에 선한 청지기처럼 열심히 봉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선한 청지기를 찾고 계십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기도하는 청지기, 사랑하는 청지기, 봉사하는 청지기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2.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7절)
1) 정신 차리고
첫째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말세가 다가오면 세상에는 극도의 혼란이 일어나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온갖 사건이 벌어집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습니까?” (마 24:3)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 24:4)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9절)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14절) 판단 기준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둘째로 맑은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거짓 교사들은 곧 말세가 다가오니 망할 세상일에 힘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가르쳐 일부 어리석은 성도들을 현실 도피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산 속에 들어가서 집단생활을 하고 교주를 재림 예수님이라고 믿고 이런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2) 근신하여 기도하라 (자신을 살피면서 기도하라) (7절)
3)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여야 합니다 (8절)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열심히 사랑한다는 것은 말 만으로 행하는 사랑이 아닌 구체적인 사랑이요, 희생적인 사랑이요,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내 안에 사랑이 메말라 있다면 내 안에 주님의 사랑이 강같이 흐르게 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안에서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사랑함으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선한 청지기같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 (9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말합니다. 그것은 서로 대접하는 일입니다. 남을 대접하는 일은 오늘날도 여전히 미덕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아름다운 성도의 도리는 오늘날 사회가 다원화되고 개별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성도들이 간직해야 할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피차’ 대접하는 것입니다.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는다면 이런 귀중하고 아름다운 행위는 오래지 않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원망 없이’ 대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남을 대접하되 아까운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즉 남을 돕되 후하게 베풀어야 합니다. 인색함으로 하는 대접은 결국 외식이요 위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기를 바랍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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