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절망에서 희망으로 (누가복음 24:30-35)

1. 사탄의 경매 품목들
사탄은 걱정, 두려움, 욕심, 슬픔 그리고 교만과 같은 물건을 팔기 위해 소비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데 상품 진열대 한 쪽 편에 ‘판매하지 않음’이라는 낡아 빠진 꼬리표를 단 물건이 있었습니다. 사탄에게 “왜 이 물건은 세일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사탄은 “다른 물건들은 충분한 여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물건은 너무 잘 팔려서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이라 제가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 물건이 바로 ‘낙심’이라는 물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 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이야기입니다. 때는 해가 뉘엿뉘엿 지는 황혼 무렵! 그러나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절망적인 분위기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기는 들었지만 확인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으로 모든 게 끝난 줄로 생각하고 낙심한 모습으로 엠마오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문은 들었으나 믿지를 못했습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가이사라 빌립보 지방에서도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고백을 들은 후에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3일에 살아나리라 (마 16:21) 그러나 제자들이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의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성경 말씀을 풀어주십니다. 그리고 식사 자리에서 성찬을 베푸십니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밝아집니다. 영안이 열린 겁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1-32절) 그들은 성경을 풀어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졌던 체험을 서로 말합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충만해졌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33) 그들에게 다시 힘이 생기고, 희망이 생겼다는 증거입니다. 절망적이던 상황에서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생명의 주님, 능력의 주님을 만난 겁니다. 그리고 그 만남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체험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반드시 변화를 경험합니다. 어떻게 변화될까요?

3. 사망에서 생명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변화됩니다. 말하자면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겁니다. 인간에게는 오래 살고 싶은 본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운명입니다. 육체적으로 죽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늘 죽음의 공포가 있고, 그럴수록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강합니다. 모든 인간이 불로장생, 오래오래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죽습니다. 천년만년 살겠다고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도 49세에 죽고 말았습니다. 기껏해야 100여 년 살다 갑니다. 오래 살아봤자 휙 하고 지나가버립니다.

4. 절망에서 희망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화됩니다. 절망은 인생을 망치는 독소입니다. 기독교인 철학자 키에르케고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망!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반대로 말하면 희망은 세상을 이기는 힘입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은 희망이 없는 인생입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절망을 가리킵니다. 세상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은 팬데믹 상황, 감염병의 대유행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한 지역만이 아니고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유행하기에 팬데믹이라고 부릅니다. 팬데믹으로 전세계의 하늘의 길이 막혀 있습니다. 뱃길도 막혀 있습니다. 여행자를 받지 않는 나라가 한 두 나라가 아닙니다. 이런 현실 앞에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수시로 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면 우리는 희망적인 삶을 삽니다.

5. 허무의 인생에서 사명의 인생으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허무한 인생에서 사명의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유가 행복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줄 압니다. 착각입니다. (벧전 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사라집니다. 금세 없어집니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이요, 10일 동안 붉은 꽃은 없다. 젊음은 잠시 지나간다. 권불십년(權不十年)입니다. 권세도 10년 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소유에 목숨 걸면 반드시 허무해집니다. 중요한 것은 소유를 얻되 무엇을 위해서 (For What) 얻느냐가 중요합니다. 그게 바로 사명이죠.
부활의 주님을 만난 제자들은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것에 집착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사명이 생긴 겁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사명! 그래서 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복음을 전합니다. 순교하면서도 기뻐했습니다. 바울의 고백대로입니다. (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무엇을 하든지 중요한 것은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겁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겁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절망에서 희망을 갖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처럼, 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역사가 있는 것처럼,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마시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시는 부활 신앙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허무에서 사명자로 변화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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