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새해에는 새로운 목표 (빌립보서 3:12-14)

다이히만은 독일 본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뒤셀도르트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정형외과 의사로 활동하다가 1956년 의사직을 포기하고 경영에만 매진하여 다이히만사를 유럽 최고의 신발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토대로 ‘벌 수 있는 한 최대로 벌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절약해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나누자’ 라는 목표아래 수많은 지원 사역을 펼쳐오고 있습니다. 인도에 나환자촌을 세워 물질적, 의료적으로 지원하고,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는 병원과 학교를 건립해 지역주민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과는 사막을 농지로 바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말과 행동’이라는 구호단체를 설립하여 독일은 물론 제3세계의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경영자의 나눔 정신을 이어받은 직원들은 자신의 월급의 일정액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공적인 자리에서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고 이야기하는 다이히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내게 얼마나 많은 신발을 팔았느냐고 묻지 않으실 겁니다. 그 분은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는지, 복음을 전파했는지 물으실 겁니다. 나는 그 일을 할 뿐입니다.” 독일에서 13번째 가는 부자였지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내어주었습니다. 진정한 부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 사람이 바로 다이히만(H. H. Deichmann)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이루고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달려갑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쉬지 않고 달려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2절)
사도 바울 역시 달리는 삶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바울은 예수에게 잡힌 바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그리스도를 위해 죽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그리스도 예수에게 잡힌 바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별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달렸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달려가십니까? 무엇에 잡힌바 되어 살아갑니까? 마치 소가 코를 꿰어 끌려가는 것처럼 억지로 세상풍조에 끌려가고, 사람들에게 끌려가지는 않습니까? 바울처럼 예수님 잡힌 바 되기 위하여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예수께 잡힌 바 되려고 하였습니까?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새해가 된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절망가운데 있던 에스겔에게 보여 주신 소망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소망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1년 동안에 이루지 못한 목표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소망가운데 새로운 목표도 정해야 할 것입니다. 목표가 없다는 것은 방황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려면 말을 바꾸어야 합니다. 믿음의 말, 긍정의 말, 적극적인 말, 축복과 격려의 말을 해야 합니다. 말은 생각을 바꾸게 합니다. 생각은 행동을 바꿉니다. 행동을 습관을 바꿉니다. 습관은 운명을 바꿉니다. 소망가운데 목표를 정하고 말을 바꾸어 봅시다.
성경에 소개 된 사람들 중에서 목표가 뚜렷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한명이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뒤 자랑하던 것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태어난 지 팔 일만에 할례 받은 것, 베냐민 지파, 바리새인, 학자라는 신분을 버렸습니다. 눈에 보이는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위해 달려가겠노라 고백합니다. 성취 지향적이 아니라 가치 중심적으로 살았던 모습입니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 (14절) 사도바울은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자가 시상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연상하면서 위에서 부르신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의 ‘부름의 상’은 충성스런 성도가 받는 상을 뜻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이룬 사람에게 상을 베푸셨습니다. 맡긴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였을 때 상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1.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살아간 사람입니다. (13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3절)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와 같은 뜻의 단어가 앞 절에도 나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바울은 같은 뜻의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였습니다. 온전히 얻었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잡은 줄로 알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까닭에 바울은 오직 한 가지 일을 잡으려고 달렸습니다.

2.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 사람입니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달려 가노라.” (14절) 푯대를 향하여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했음을 밝혔습니다. 확실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기 위해 푯대만 바라보며 달려갔습니다. 그의 믿음은 기다리는 믿음이 아니라 달려가는 믿음입니다. 끌려가는 믿음이 아니라 달려가는 믿음이었습니다.

3. 바울은 상급을 바라 보았습니다. (14절)
중국에서 순교했던 선교사 중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에릭 리델(Eric Liddell)이 있었습니다. 선교사 자녀인 그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육상 4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올림픽의 영광을 뒤로 한 채 그리스도를 위하여 중국에서 20년을 사역하다가 일본군에 붙잡혀 가택연금을 당했고 영양부족으로 천국에 갔습니다. 그의 불꽃같은 삶은 영화 ‘불의 전차’에서도 소개되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 보다는 하늘에서의 상급을 사모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4절)
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동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린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계속하여 달렸던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십니까? 왜 달려야 하는 지 이유를 잊어버린 것은 아닙니까?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께 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주인을 잃어버린 개와 같다고 비유합니다. 주인 없이 떠돌아다니는 개는 지나가는 도, 발로 걷어차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주인이 데리고 나온 개에게는 아무도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손가락질과 비판을 받는 현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주인을 찾아야 합니다. 주인이신 예수의 손에 잡힌 바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달려야 합니다. 새해를 맞아 예수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 담임)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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