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무엇을 먼저 하시렵니까? (마태복음 6:33)
어느 큰 저택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 집 여주인은 겁에 질려 홀로 뛰쳐나왔다가,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다시 불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귀중품이 들어있는 보석 상자를 안고 나오면서 “아, 이제 살았다. 내 귀고리, 내 목걸이, 내 팔찌, 모든 보석을 다 찾았다. 참으로 다행이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사람들이 “저기 보세요. 아이들이 불이 난 집의 창가에 있어요.”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녀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내 아이들! 내 아이들!”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 아이들이 아직도 불 속에 있음을 알고는 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었지만, 이미 불은 아이들의 생명을 삼켜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물질에 눈이 어두워 보석 상자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자녀들의 귀중한 생명을 건지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를 “가치관의 혼돈시대” 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여인처럼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삶의 우선순위를 알면서도 그것을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신학자 존 네이스빗은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하면 삶의 목표에서 멀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찰스 휴멜은 “우리들이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들은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함에서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불행은 우선순위를 혼동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우선순위’를 바르게 정하는 것이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의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축복은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줄로 믿습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변명과 핑계입니다. 이것 때문에, 저것 때문에,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자신을 정당화 혹은 합리화 하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일이 더 커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엉뚱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마 6:33)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아멘
세계적 첼리스트 Pablo Casals란 분이 계십니다. 이분은 93세의 장수를 하신 분이신 데, 80세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는 지난 40년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피아노에 가서 바하 음악 두 곡을 꼭 쳐왔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바하의 음악은 거의 모두가 신앙적인 내용으로 되어있지 않습니까? Casals는 이렇게 말을 계속합니다. “내가 바하의 곡을 친 것은 피아노 연습이 아니다. 그 날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헌신의 기도였다. 그 순간 나는 나와 나의 온 가족에게 축복이 임함을 느꼈다. 아침의 피아노로 드리는 기도의 시간에 나는 영원을 체험하였고,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실감하였다. 내가 살아온 하루하루의 날이 그래서 언제나 새롭고 감격스러웠다!!”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이 많은 문제들. 이것들을 과연 어떻게 해결하며 어떻게 감당할 것입니까? 가정에서의 문제, 사업경영에서의 문제, 자녀들과의 문제, 대인관계에서의 문제, 이 모든 문제들을 안고, 어떻게든 그것을 해결해 보려고 바동거려 보지만, 그러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더욱 꼬이기만 하지는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지금껏 해오듯이, 계속해서 그저 누구 때문이라고 무엇 때문이라고, 그냥 핑계만 하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 크리스챤이 지녀야 할 우선순위에 대한 원칙을 분명하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롬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태어날 수 없고요, 내가 죽고 싶을 때에 죽을 수도 없습니다. 생사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퇴원시켜 집으로 보내려고 할 때, 그 환자가 정말 이제는 퇴원할 수 있을 만큼 좋아졌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 환자를 어떤 방에 들여보내는데, 그 방에는 수도가 있습니다. 미리 수돗물이 조금씩 흐르도록 수도꼭지가 풀려있고, 자연히 넘친 물이 방바닥에 흥건히 고여 있습니다. 이제 의사는 환자에게 걸레를 주고 물을 닦으라고 합니다. 물론 생각이 정상적인 사람은 수돗물이 넘치고 있는 것, 즉 방바닥에 물이 고인 근본문제를 발견하고는, 먼저 수도꼭지를 잠근 후에 바닥의 물을 닦습니다. 이 같은 환자는 퇴원해도 좋은 환자이지요. 그러나 어떤 환자는 수도꼭지는 내버려두고, 방바닥만 부지런히 닦습니다. 바쁘게 일은 하지만, 아직도 치료가 더 필요한 환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들은 많은 문제를 안고, 그것을 해결해 보겠다고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야단이지만, 그러나 근본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풀리지 않고, 계속 꼬이고만 있지를 아니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도, 아직도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이들은 문제의 근원은 쳐다볼 생각은 아니하며 그저 “시간이 없다. 바쁘다”고만 외쳐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는 장면 (눅 9:59-62)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가로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케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풍성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한번 생각해 볼 이야기입니다. 순서가 바뀌면 개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어로 ‘GOD’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글자의 순서를 뒤집어 보십시오. ‘DOG’가 됩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할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피조물을 더 경배하여 순서가 바뀌어 지면 결국은 개처럼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미국에 구두로 돈을 엄청나게 번 브라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구두로 성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제 성공의 비결은 우선순위가 분명하였습니다. 저는 매사에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그리고 셋째는 구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형통하게 하여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먼저하시렵니까?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