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네 부모를 공경하라 (출애굽기 20:12)

1. 기독교 신앙과 효
Happy Mother’s Day!! (해피 마더스데이!!) 한국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킵니다. 그러나 미국은 5월 두 번째 주일은 어머니날로 6월의 세 번째 주일은 아버지날로 지킵니다. 모두가 공통적인 것은 어머니 아버지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날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효라는 개념을 유교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유교가 중요시 하는 것은 제사입니다. 기독교는 제사를 장례하지 않기에 효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살아 생전에 잘하는 것이 효라고 가르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제사를 아무리 화려하게 드린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유교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공자는 기원전 6세기 (BC 551-479)에 활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나오는 십계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때는 공자가 태어나기 전 약 1,000년 전인 기원전 15세기 (BC 1446)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효 사상에 대한 원조는 유교가 아니라 기독교이며, 사서삼경이 효 사상의 원조이 아니라 성경이야말로 효에 대한 가르침의 원조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613개입니다. 그 계명을 줄여 논 것이 10계명입니다. 십계명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종교적인 관계라고 하고,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적 관계입니다. 윤리적 관계 첫 번째가 부모공경입니다. 10가지의 계명이 다 중요하지만 첫째는 더 중요합니다. 종교적인 관계 첫째는 하나님이입니다.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윤리적인 관계의 첫째는 부모님입니다. (출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약에 와서 사도 바울도 효에 대한 말씀을 강조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 6:1-3)
부모에게 효를 행하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축복입니다. 잘 된다. 장수한다.

2. 효도란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대해서 감사해야 할 이유는 먼저 그분들이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며 또 우리가 지금 살아 있기까지 사랑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이 효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불효자라고 합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약속하십니다. 1년에 한 번은 부족합니다. 1년 365일 어머니날이 되어야 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1-3) ‘생명이 길고, 네가 잘 되고’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효도한 사람입니다. 한 해는 100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더라 (창 26:12-14) 성경에 등장하는 첫 번째 거부가 이삭입니다. 두 번째 거부가 그 아들 야곱입니다. 세번째 거부는 바르실래입니다.
어떻게 효도를 합니까? 아시는 대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살이었을 때 태어납니다. 이삭이 청소년기로 추정이 됩니다.(창 22장 사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모리산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의 제단을 쌓고 그 아들 이삭을 짐승 잡듯이 잡아서 불에 태워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워낙 믿음이 좋은 사람이니깐 그렇다고 쳐도 이삭은 글쎄요? 3일 길을 걸어서 모리아산에 도착을 합니다. 이삭이 아버지와 함께 모리산으로 올라가면서 보니 이상합니다. 장작도 있고, 불과 칼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물만 없습니다. 묻습니다. ‘아버지 제물은 어디 있습니까?’ 아버지의 대답이 곤란합니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실 것이다’ 산 정상에 올라가서 가지고 온 장작으로 제단을 만들고 이삭을 묶습니다. 그리고 칼로 이삭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 순간까지 이삭은 반항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그런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순종합니다. 묻지도 않습니다. 따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복을 받고, 이삭도 복을 받습니다. (창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 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멘
하나님의 복은 아무에게나 가볍게 막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잘 순종하는 자들에게만 주십니다. 오래 살기를 원하시면 효도하십시오. 잘 되기를 원하시면 효도하십시오.

3. 효도란 공경하는 것입니다.
공경은 곧 존경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조상이 되고 족보에까지 등재됩니다. 이스라엘 족보에는 여자의 이름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장에 소개되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룻의 이름이 당당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엘리멜렉이 그 아내 나오미와 두 이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으로 이민을 갑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살 길을 찾아 모압이라는 낮선 곳으로 갑니다. 말론과 기룐이 그곳 모압 여인과 결혼을 합니다. 오르바와 룻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 말룐과 기룐이 죽습니다. 잘 살아 보겠다고 온 이민생활에 집안의 남자들이 다 죽는 불행이 닥칩니다. 나오미가 생각한 끝에 나는 죽어도 고향에 가서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두 며느리를 불러서 다른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오르바는 떠났습니다. 그런데 룻은 떠나지를 않습니다. (룻기 1:16-18)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그래서 룻은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오게 됩니다. 이미 이민 갈때에 가진 땅을 다 정리했기에 그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친척인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어다가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양합니다. 감동 받은 나오미가 보아스와의 결혼을 추진해서 결국 결혼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낳은 아들이 오벳입니다. 그의 손자가 이새입니다. 그의 증손자가 다윗입니다. 대를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합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이방 여인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조상이 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족보에 등재됩니다. 시어머니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공경하니 그런 영적인 축복과 육적인 축복을 함께 받아 누립니다. 효자도 힘들지만 효부는 더욱 더 힘이 듭니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를 잘 공경합니다.

4. 효란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 23:25) 우리 부모님들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그것이 효도입니다. 돈 좋아하시면 돈, 전화 좋아하시면 전화, 찾아 오는 것 좋아하시면 찾아가고… 효도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효도함으로 복 받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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