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네 믿음을 보이라 (야고보서 2:14-26)

몇 년 전 미시간에서 부흥회를 마치고 월요일에 목사님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를 간 적이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있는데 정말 아름다운 자연 폭포입니다. 뭐라고 말 못하고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이 폭포와 연관된 에피소드가 참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통나무로 만든 둥근 통을 타고 폭포 아래로 떨어졌는데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직접 배를 타고 위에서 뛰어내렸는데 아직까지도 배도 사람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폭포 근처 박물관에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외줄타기 곡예사 블론딘의 이야기입니다. 블론딘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미국과 캐나다 양쪽에 외줄을 묶어 놓고 막대기 하나를 들고 그 거센 물살과 폭포가 휘몰아치는 나이아가라 폭포 위를 외줄을 타고 몇 차례를 건넌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미국 쪽에도 캐나다 쪽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구경하기 위하여 모여 있었습니다. 블론딘의 곡예가 시작이 됩니다. 미국 쪽에 모인 사람들에게 “여러분, 내가 이 외줄을 타고 건너겠습니다. 내가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까?” “예” 소리가 우렁찹니다. 블론딘이 막대기 하나를 들고 조심스럽게 건너갑니다. 그러자 사람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지릅니다. 캐나다 쪽으로 건너온 블론딘이 사람들을 향하여 “여러분 이번에는 등에 의자를 지고 건너겠습니다. 내가 건너 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예” 블론딘은 조심스럽게 땀을 흘리면서 건너갑니다. 무사히 건넜습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소리가 그칠 줄 모릅니다. 블론딘이 또 이야기를 합니다. “이번엔 등에 사람을 업고 건너겠습니다. 믿습니까?” 이제 함성 소리가 더 커집니다. “You can do it!” 함성이 그칠 줄 모릅니다. “여러분 중에서 한 사람 나오십시오.”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이 조용합니다. 블론딘은 자기의 매니저 해리 코드를 업고 건넜습니다. 구경 나온 수많은 군중들은 정말로 그가 사람을 업고 건널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난 아닙니다. 믿음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습니다. 말로만 블론딘을 믿는다고 소리쳤던 군중들과 48미터 높이의 밧줄 위에서 목숨을 블론딘에게 맡겼던 해리 코드의 믿음과 우리는 너무나도 다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말과 생각만의 믿음입니까? 아니면 실천하는 믿음입니까?

말로만 믿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고 큰소리는 치는데 정작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입술로만 믿는 믿음입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 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약 2:16) 지금 당장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먹을 것은 주지 않고 말로만 집에 가서 배불리 먹으라고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즘 불신자들이 믿는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조롱합니다. “예수쟁이들은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 거야” 요즘은 더 업그레이드돼서 입이 뜨지 않고 엉덩이가 뜬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물에 빠져서도 물속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부흥을 외치면서도 정작 교회 부흥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부흥이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신자가 늘어나는 것이 양적인 부흥입니다. 그러면 새신자가 등록하도록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교회가 자선사업도 하고, 한인사회도 돕고, 홈리스 도 돕자고 하는 일이 많습니다. 물론 그 일을 교회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재정적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귀한 일들을 위해서 헌금을 해야지요. 헌금은 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마 7:21)

머리로만 믿는 믿음
또한 어떤 사람들은 ‘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기 머리로만 믿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런 믿음을 ‘헛된 믿음’ 혹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19-20절) 귀신도 하나님에 대하여 잘 압니다. 그러나 귀신이 아는 것은 다 헛것입니다.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은 예수님을 단 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해서 뭐가 달라졌습니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알기만 했지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합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완전한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말로만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머리로만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의 믿음이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야고보서 2장에는 믿음을 행동으로 옮겨서 큰 복을 받았던 두 분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아브라함이고 한 사람은 라합입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은 믿은 대로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진정한 믿음입니다.

영국에 존 윌튼이라는 매우 훌륭한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71세 때 영국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작위(귀족)까지 받은 분입니다. 그는 원래 26세까지 삶을 방황하며 탕자처럼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인생을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우연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목사님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내용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날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와 그는 겨자씨 한 알을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 겨자씨를 꺼내 보면서 다짐했습니다. “이만한 믿음만 있어도 나는 할 수 있어” 훗날 성공한 그에게 기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의 인생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저는 순간순간 제가 약해질 때나, 힘들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겨자씨를 바라보면서 이겨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입술로만 믿는 사람을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머리로만 믿는 사람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가장 작은 것일지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하십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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