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나의 어머니 (마태복음 15:21-28)

1. 어머니 은혜 (윤춘병 작사. 박재훈 작곡)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기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 보다도 높은 것 같아. 높고 높은 바다라고 말들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사람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 보다도 넓은 것 같아.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큰 사랑 거룩한 사랑.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드리자.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오늘 어머니 주일입니다. 나의 어머니, 우리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먼저 우리의 어머니들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모든 사람이 어머니 없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소개되는 이 어머니는 예수님 당시로 말하자면 이방 여인입니다. 천대받는 여인이고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거기다가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보통 속상한 게 아닐 것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이 귀신들렸다 하면 참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남들이 자식 자랑하면 기가 죽어서 그 틈에 끼지도 못하고 그렇지요.
가끔 보면 자식이 없는 사람에게 자식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대화를 하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서 대화의 주제를 삼아야 하지요. 아들이 없는 사람 앞에서는 아들 이야기하는 것은 좀 그렇지요. 남편이 없는 사람에게 남편 자랑하거나, 아내가 없는 사람에게 아내 자랑하거나,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 자랑하거나, 아픈 사람에게 건강 이야기를 하면 좀 그렇지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배려심이 없는 것이지요. 좀 바보 같은 사람이지요.

2. 가나안 여인의 딸 사랑
말씀 드린대로 이 여인은 딸이 귀신들려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출생부터 핸디캡 아이들도 있고요. 자라면서 다친 아이들도 있고요. 자식을 키우다 보면 별의 별 일이 다 생기지요. 그래서 자식 키우는 사람은 큰소리 못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나이다’ (22절)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 (24절)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절하며 부탁합니다. ‘주님 나를 도와주세요’ (25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 (26절)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27절)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을 개 취급을 함에도 불구하고, 귀신들린 딸을 위하여 모욕감도 참고 견딥니다. 이것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딸이 귀신들렸는데,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입니다. 딸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자식의 문제가 곧 어머니의 문제이지요. 대개의 자식들은 어머니가 자기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를 잘 모릅니다. 자기가 자식을 낳아 보아야 알지요. 자식을 낳아 봐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감탄했습니다.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28절) 그 시로부터 딸이 나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믿음이, 어머니의 사랑이, 딸에게 자유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3. 장한 나의 어머니들
자신의 생명을 걸고 아들을 지킨 어머니,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 아들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두 아들의 출세를 부탁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 살로메. 처녀의 몸으로 성령으로 잉태케 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모두가 한결같은 어머니들입니다.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93’이라는 장편 소설의 내용입니다. 프랑스 혁명 시절을 배경으로 쓴 작품입니다.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군인들이 지나가다가 굶주림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빵을 던져줍니다. 그 빵을 받은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빵을 나누어 줍니다. 그 광경을 지켜 본 한 병사가 말합니다. ‘저 여자는 배가 고프지 않은지 자식들에게만 빵을 나누어 주고 자신은 먹지를 않네요’ 옆에서 듣고 있던 상사가 말합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서가 아니고 어머니이기 때문이다’라고 가르쳐 줍니다. 어머니가 누군지를 아시겠지요.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은 그랬습니다. 자신은 굶어도 자식들은 굶기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들입니다.

4. 어머니에게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잠언 23:25)
옛날에 임금님이 시골로 행차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가까이에서 임금님을 한번 보고 싶어합니다. 지금처럼 신문이나 텔레비젼도 없는 시절이라, 실제로 임금님을 볼 기회가 없지요. 그래서 가까이에서 먼데서 모두들 임금님이 행차하실 길가로 모여듭니다. 한편, 멀리서 이 소식을 들은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자리에 누워 있어 거동이 불편한지라, 이 노인은 아들에게 부탁합니다. “얘야, 나 말이다 임금님 얼굴 한번 뵈었으면 좋겠구나” “예, 그렇게 하시지요” 효자 아들은 아무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고는 어머니를 업고 70리 길을 걸어서 임금님 행차하시는 길까지 왔습니다. 어머니를 아기 업듯이 단단히 받쳐 업고서, 어떻게든 어머니가 임금님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애썼습니다. 임금님이 지나가다가 이 모자(母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멈춰라!” 그리고 아들에게 물어봅니다. “어떻게 된 사연이냐?” “어머니가 임금님을 뵙고 싶다 하셔서 제가 모셔왔습니다” “참으로 효자로고” 임금님은 그 자리에서 효자 아들에게 상을 후하게 주었습니다. 이 소문이 퍼지자 다른 마을의 아주 못돼먹기로 소문난 불효자는 배가 아팠습니다. 그래서 안가겠다는 제 어머니를 강제로 업고, 임금님이 행차하실 길목에 가서 떡하니 서 있었습니다. 역시나 임금님이 이 모습을 보고 흐뭇해합니다. “이 근방에는 효자도 많구나. 기특한 일이로고. 너는 무슨 사연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왔느냐?” 불효자는 효자의 말을 그대로 흉내 내어 아뢰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네사람들이 “아닙니다, 임금님. 저놈은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라고 일러 바쳤습니다. 이 말을 들은 임금님을 껄껄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흉내라도 좋아. 효도를 흉내 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 하시며 불효자에게도 상을 후하게 주었답니다. 그렇습니다. 효도하는 일은 흉내를 내도 괜찮습니다.

교회를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일은 믿음의 선배들이 한 일을 흉내 내는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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