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 (류복현 목사) – 겉사람과 속사람 (고린도후서 4:16)

◉ 다니엘의 성숙한 믿음
다니엘이라는 믿음의 사람은 지금부터 약 263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의 기록은 2627년부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가 소년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5세 정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 때가 BC 605년 입니다. 바벨론에 의해서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서 1차로 포로로 잡혀간 때입니다. 그리고 2차 3차에 걸쳐서 유다 민족이 왕을 포함해서 모든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갑니다. 다니엘이 잡혀간 후 정확하게 19년 후입니다. 예루살렘은 불에 타고 심지어 솔로몬 성전도 불에 타 버렸습니다. 성전이 완공되고 373년 후의 일입니다. (BC 959-586) 정말로 비참한 시기입니다. 남은 사람들은 몸이 아프거나 나약한 사람들 즉 아무 쓸모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만 남겨 둡니다. 그리고 그들 전체를 바벨론 그발 강가에 모여 살도록 합니다. 그러나 1차로 잡혀 온 소년들은 왕족과 귀족들의 자녀들이였습니다. 뿐 만 아니라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였으며 지식도 구비하여 학문에 뛰어났습니다. 다니엘도 왕족이거나 귀족의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바벨론의 학문과 말을 가르쳤습니다. 바벨론화 시키기 위함이지요. 시간이 흘러서 다리오왕이 다스릴 때에 다니엘은 학문과 지혜가 뛰어나서 전국을 다스리는 3명의 총리 중 한 사람으로 발탁이 됩니다. 그리고 왕에게 총애를 받습니다. 그 일로 나머지 두 명의 총리가 시기하여 다니엘을 죽일 궁리를 합니다. 아무리 뒷조사를 해 보아도 흠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연구 끝에 다리오 왕을 설득시켜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신이나 사람에게 무엇이든 구하는 자는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 는 조서를 쓰게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다니엘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 6:10) 주목할 만한 세 문장입니다. ‘알고도’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 “알고도”
다니엘은 기도하면 죽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도하면 굶주린 사자 굴에 들어 간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사자 굴에 들어가면 죽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도 기도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손해 보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망 할 수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직장에서 쫒겨 나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기도를 합니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2. “전에 하던 대로”
전에 하던 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킵니다. 전에 하던 대로 십일조 생활을 합니다. 전에 하던 대로 감사헌금, 선교헌금을 드립니다. 상황이 바뀌였다고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대로입니다. 코로나 사태라고 해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믿음생활을 합니다. 세상은 변하여도 믿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3.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죽을 수 있는 상황이 내 앞에 닥쳤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감사했습니다. 힘들고 아주 나쁜 상황임에도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성숙한 믿음의 사람 모습입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무슨 믿음입니까? 성숙한 믿음입니다. 믿음이 그로 하여금 사자 굴에 던져지는 위기 속에서도 담대하게 만들었고, 믿음이 그로 하여금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믿음과 감사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막아 그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처럼 감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 때 다니엘의 나이가 적어도 80살 이상일 것입니다. 15살에 포로로 잡혀왔다고 하면 82세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온 지 67년이 지났습니다.

우리의 약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하던 일을 다 내려 놓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이가 많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으면 경륜 즉 경험이 많습니다. 그 많은 경험을 좋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이를 핑계로 다 내려놓습니다. 은퇴를 합니다. 피곤하고 힘들어서 일을 그만 둔다는 것입니다. 믿음생활에 은퇴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계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Re tire, 타이어를 새로 갈아 끼운다는 뜻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더 새롭게 일을 할 수 있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더 열심히 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선배 목사님들의 사례입니다. 한 선배 목사님은 담임목사직을 그만 두고 Sunday School 교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목회하면서 믿음생활을 하면서 배운 실력이 많잖습니까? 다른 선배 목사님은 해외 선교사로 가셨습니다. 젊은 선교사들은 걱정이 많습니다. 생활비 문제, 선교비 문제, 자녀들 교육문제 등 그러나 담임목사직을 그만 두신 목사님은 그런 염려가 없습니다. 선교비 문제, 자녀들 문제가 다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젊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생각이 늙으면 마음도 늙고 몸도 늙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젊으면 마음도 젊고 몸도 젊어집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 몸도 늙어갑니다. 그러나 생각이 더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겉 사람은 늙어가도 속사람은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이가 들어도 속사람 즉 영혼은 더 젊어진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젊어집니다. 나이 들었다고 나이 이야기 하면서 노인네 행세하는 것을 ‘꼰대’ 라고 합니다. ‘젊었을 때 나도 다 해 봤어’ ‘나때는 말야’ ‘옛날엔 말이야’ ‘아 이제 늙어서 못 해’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알어’ 그런 식의 말을 하고 살면 몸도 마음도 점점 아프고 늙어갑니다. 성숙한 믿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신앙의 연조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새롭게 힘 있게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6)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 3:9)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영, 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육신을 겉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혼을 속사람이라고 합니다. 겉사람은 늙어가도 병들어 가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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