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칼럼(류복현 목사) – 긍휼을 베푸는 사람 (마태복음 5:7)

긍휼히 여긴다는 말의 뜻은 불쌍히 여긴다, 측은히 여긴다, 동정한다, 자비를 베푼다, 은혜를 베푼다, 사랑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이웃에 대해서 가지는 마음과 삶의 자세입니다. 불행한 형편과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는 사람을 보고 조소하고 비웃는 대신 불쌍히 여기고 가까이 가서 그를 어루만지며 사랑을 베풀고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에게 해를 끼친 사람까지도 원망하고 미워하는 대신 불쌍히 여기고 용서를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묘사하는 말이 있다면 그 말은 바로 긍휼이란 말일 것입니다. 시편에 자주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시 103:8) 입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이웃집에 가서 낫을 좀 빌려오라” 고 했습니다. 이 아들이 이웃집에 갔다 와서 하는 말이 “낫을 빌려줄 수 없다고 합니다.” 거절당하고 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후에 바로 그 이웃에서 이 집에 낫을 빌리러 왔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낫을 빌려주어라.” 아들은 이때에 아버지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 저 집에서는 낫을 빌려주지 않았는데요.” 그 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빌려줄 수 없다는 것은 복수다. 저 집에서 빌려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려 준다 라고 말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빌려주면 그것은 증오다. 거절당했다고 하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아무 상관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그저 낫이 필요하다니까 빌려 준다 하는 마음으로 빌려주면 그것은 긍휼이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대답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자세로 살고 있습니까? 항상 복수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범사에 증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에게 범사에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긍휼이라는 단어의 성경적 깊은 뜻은 무엇일까요? 긍휼이라는 단어는 쉽게 말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우리말 사전에는 ‘가엽게 여겨 도움’ 이라고 하였습니다.

니느웨 성 요나
하나님께서 죄악이 가득한 니느웨 성를 구원하신 다음 그것을 불평하는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 4:11).
니느웨는 조상 대대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민족입니다. 그들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요나는 생각했습니다. 복수심, 증오심이 가득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탕자 이야기
예수님께서 탕자의 이야기를 하신 다음 하나님의 마음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눅 15:22-24) 이것이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맏아들은 돌아온 탕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불평했지만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돌아온 탕자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레위인도 제사장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강도 만난 사람을 돌보아 줍니다. 자신의 나귀에 태우고 주막까지 가서 치료해 달라고 부탁하고 치료비까지 주고 갑니다.그의 모습에서 자비롭고 긍휼이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도울 수 있는 때에 도와주세요. 베풀 수 있는 때에 베푸시기 바랍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전도자 찰스 피니 이야기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찰스 피니는 시카고 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울었답니다. 근사하게 차려 입은 저들의 외형보다는 저들의 내면 속에 있는 죽은 심령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들은 교만, 미움, 시기, 질투로 가득 차 있고 온통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들을 보면서 울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자비로운 마음도 없으며, 온유한 마음도 없고, 애통하는 마음도 없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울었답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용서해야 합니다. 요셉이 형님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중에 총리가 됩니다. 나중에 요셉의 형들은 요셉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보복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을 후대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긍휼을 베풉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원수까지 용서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돌을 던지며 죽이려는 군중을 향해서 긍휼을 베푼 스데반 집사를 기억하십니까? ‘주님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것이 긍휼을 베푸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은 네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1)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이기주의 2)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개인주의 3)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합리주의 4) 받을 생각을 떠나서 주기만 하는 이타주의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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