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칼럼(이근형 목사) – 감사에 희망의 옷을 입히고

몇 일간 비가 내린다. 원래 지구의 날씨는 정해져 있었다. 조금 오락가락 하긴 해도 물 공기 바람 온도는 전체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은 그때 그때 적응하며 사는 법을 안다. 추수 역시도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감사하라고 이 계절은 메시지를 주는 것 같다.
감사와 희망을 안고 맥알렌과 리오그란데 밸리 지역에 살고 있는 믿음의 지도자들이 미국장로교회에서 추수감사주일을 한주 앞두고 미리 모였다. 이 도시의 믿음의 사람들이 ‘Interfaith Service of Thanksgiving and Hope’라는 이름을 걸었다. 말씀을 나누었다. 감사기도를 올렸다. 각양 각색의 사람들의 얼굴도 보고 말을 듣다가 울컥하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우리의 모임은 믿음과 믿음의 모임이다. 다른 목적은 없다. 종교와 인종은 달라도 미국의 감사절 앞에서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다양한 믿음들의 만남이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교리를 말하고 복음을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노래가 하나를 만들었고 커뮤니티에 대한 감사가 하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감사는 벽이 없다. 감사면 된다.
우리의 주제는 감사와 희망이었다. 감사에 희망의 옷을 입혔다. 이것이 믿음의 리더들이 이곳 커뮤니티에 미리 보내는 메시지가 되었을 것 같다. 감사가 희망을 낳게 하자는 취지다. 오직 감사다. 슬퍼도 감사다. 기뻐도 감사다. 종파가 달라도 감사다. 국경도시에 사는 것도 감사이고, 평화를 손에 들고 함께 모일 수 있는 것도 감사이고, 종교 간의 한계를 넘어 각자의 믿음의 소리들을 함께 듣고 나눌 수 있음도 또한 감사다. 그리고 어색하게 함께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감사할 일이다. ‘어색함이 기회다’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금년 추수감사절은 온 세계가 전쟁의 국면에 놓여있다. 평화의 추수를 바랄 것 같다. 전쟁이 끝났다고 하자. 평화가 왔다고 하자. 전쟁으로 죽었고 쫒겨 갔고 가족도 없어졌고 모든 것을 잃었는데, 평화와 휴전을 말하는 것이 무슨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만시지탄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누가 보상해 줄 수 있을까? 하늘이 보상해 줄까? 그렇다고 해도 전후 모든 사정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금년에도 잔인한 전쟁은 감사를 빼앗아 갔다. 전쟁은 이곳 저곳에 좋지 않는 영향을 주었다. 모두가 더 힘들어 졌다.
이제 우리는 감사를 지키고자 희망을 말한다. 전쟁은 끝이 있다. 그러나 폐허는 언제든지 감사와 희망을 말하는 우리들의 몫이었다. 희망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고생 속에서도 뒷수습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에는 전쟁을 예방하는 방법은 없나 보다. 늘 그랬다. 건물이 붕괴되어 사람이 잔해에 깔렸다고 해보자. 어떻게 살릴 수 있는 지만 말하면 된다. 희망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계산이 없다, 일단 살려 놓는 일 그래야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벽을 넘게 하는 일이다. 희망의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세상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가지려는 것이 아니다. 전쟁과 탐욕은 언제든지 폐허를 만들어 놓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상처들과 흔적들 뒤에서 묵묵히 움직이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희망의 바톤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이번에 한 곳에서 만났다.
국경의 여러도시에서 모인 믿음의 사람들이 힘을 모았다. 믿음과 믿음이 만나 감사와 희망을 따라가려는 것이다. 이처럼 감사에 입혀진 희망의 옷을 입고 평화를 위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었으면 좋겠다.
완전한 평화의 길은 없다. 그러나 선한 뜻을 가지고 한 걸음씩 함께 가다 보면 순간순간 경험하는 평화가 쌓여가며 또 다른 감사와 희망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이근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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