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칼럼(송영일 목사) – “후회없는 인생의 본문이 무엇일까?”

어떤 제자가 유명한 철학자 하이넥커에게 물었다.
“인생이 무엇입니까?”
“내던져진 존재라.“
세익스피어는 똑같은 질물을 받고 대답했다.
“인생인 불안전한 항해라.”
블레이크는 말했다.
“인생이란 아침에는 생각하고 낮에는 행동하고 저녁이면 먹고 밤에는 잠드는 것이라.”
그러나 하나님은 전도서를 통해서 말씀하신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다가 흩어진 그곳에서 지상의 삶에 종지부를 찍는 그것이 인생이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전1:10-11)
우리가 살다가 가면 후대들은 비록 자기 부모형제일지라도 기억됨이 없어진다.
인생이란 지나놓고 보면 “헛되고 헛되고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다.
“인생이란 흩어진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살아다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흩어진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17,18세기의 영국의 수많은 영웅들의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졌다고 한다.
“지금의 당신과 나도 한 번은 그랬소. 그러나 지금의 나처럼 당신도 쉬이 되리니 죽을 준비를 해 가지고 나를 따라 오시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만이 흩어진 곳에서 다시 하늘나라로 모이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땅의 것들을 위하여 살 때 결국 다 안개처럼 쉬 지나가고 꽃닢처럼 흩어지고 이슬처럼 사라질 것들이라서 헛되다 말한 것이다.
우리가 참으로 본받을 교훈들은 120년 전에 조선땅에 건너와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님들의 삶의 이야기들 중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1200년 전 한국 초대교회사에 보면 헌신적인 마펫 선교사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모두 마치고 노장의 몸을 이끌고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국 교회의 교회지도자들은 그를 위해서 비석을 세우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우상의 개념이 아니라 기념의 차원에서 비를 세우는데 동의했다.
이때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누구보다도 마펫 선교사님을 존경합니다. 그분은 한국 교회의 은인이자 내 신앙의 선배이십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분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분의 동상을 세우신다면 나는 도끼로 그 동상을 때려 부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우십시오. 그러면 또 다시 나는 부술 것입니다.”
결국 이와 같은 최권능 목사의 충정을 이해한 마펫 박사의 간절한 만류로 대신 기념관만을 세우기로 결정되었다는 뒷 이야기가 교회사에 남아있다.
칼빈도 자신이 죽은 후에 자기의 비석을 세우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당부하였다.
그것은 자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가리워질까 두려워한 이유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이름을 내려고 안달을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를 높이려고 기를 쓴다. 많은 그리스도들이 자기의를 주장하고 고집한다. 솔로몬 왕은 전도서를 통하여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간곡히 말한다.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전1:12,14)
그렇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붙잡아야할 것은 무엇일까? 전도서의 마지막장 마지막 절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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